노광준 OBS 피디, ‘오늘의 기후’ 뉴스레터 발행, 농화학 88
인천의 한 중학교 교실,
진로수업 시간이 시작됐다. 진로 상담 선생님은 오늘은 각자의 꿈에 대해 말해보자며 한 학생을 지목했다. 전교 1등 현서(가명)였다.
“음…. 아직 구체적인 진로는 결정하지 않았는 데요. 저는 아픈 사람을 고쳐드리는 의사나 생명과학자를 꿈꾸고 있어요.”
오…. 아이들은 역시 현서라며 엄지 척을 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말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런데 한 학생이 입을 열자 모두가 얼어붙었다.
“저는 발레리나가 될 거예요.”
그 학생은 다름 아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증장애인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말이 나오자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도 침을 꿀꺽 삼키며 학생의 말을 경청했다. 학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꿈을 밝혔다.
“얼마 전 줄기세포에 관한 <사이언스> 논문도 나왔잖아요. 나중에 제가 어른이 될 때쯤 누구나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시대가 오면 저는 어릴 때부터의 꿈이던 발레리나가 될 거예요.”
그날 밤, 현서는 진로수업 광경을 다시 떠올렸다, 발레리나가 되겠다던 장애인 친구의 말…. 그리고 궁금했다. 줄기세포가 뭐길래…. 그렇게 현서는 인터넷을 켜고 ‘줄기세포’를 검색했다. 자연스럽게 황우석 박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이 이 논란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그리고 생명공학도로서의 꿈을 꾸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고 현서는 훗날 내게 말해줬다. (그로부터 2년 뒤 현서 씨는 한겨울 삭풍이 부는 청와대 앞에서 줄기세포 재연실험을 요구하는 청소년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했고, 나는 그를 2015년 경 만나 취재했다.)
그 해 8월 서울대학교 수의대 앞 잔디밭,
황우석 교수가 개 한 마리를 안고 기자들 앞에 서자 수십 명의 취재진이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개는 아프간 하운드종이었다. 다 자라면 비단결처럼 탐스러운 털을 지니며 험준한 지형에서도 빠르게 달려 오래전부터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수렵용으로 활약했다는 아프간하운드, 그 개를 복제한 거다. 세계 최초의 복제 개 탄생, 이번에는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2005년 8월 4일의 일이다.
‘황 교수팀은 그동안 1,095개의 복제수정란을 만들어 123마리의 대리모 개에 이식해 3마리를 임신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가운데 2마리를 출산했고 지난 5월 태어난 한 마리는 생후 22일 만에 폐렴으로 죽었지만 스너피는 살아남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 최초로 개 복제에 성공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복제개의 이름도 서울대학교의 영문 머릿글자 SNU와 강아지를 뜻하는 영어 퍼피를 합성해 스너피라고 지었습니다.’ (KBS뉴스, 2005.8.4)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밑줄 쫙, 스너피가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인 2005년 4월에 이미 황 박사의 실험실로 찾아와 이제 막 받아낸 스너피 수술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너피뿐 아니라 <사이언스> 논문으로 발표될 ‘줄기세포’ 현황까지도 살펴봤다. 그중 한 사람은 복제양 돌리를 성공시킨 영국의 이언 윌머트 경이었고, 또 한 사람은 제럴드 섀튼 박사였으며, 또 한 사람은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장이었다. 검찰수사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4월 초순 서울대 실험실을 방문해 복제 개 스너피 현황 및 줄기세포 배양상태까지 황 박사로부터 보고받았다. 세포 상태를 전자 현미경을 통해 실물로 확인했음도 물론이다. 다시 한번, 윌머트가 찾아왔을 때 섀튼 박사가 옆에 있었고 노성일 이사장도 함께 줄기세포를 봤다…. 밑줄 쫙 (이후 이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PD수첩>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줄기세포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말했고, 또 한 사람은 말 끝을 흐렸다.)
8월 말 MBC 시사교양국,
<PD수첩>의 제작피디는 데스크에 황우석 박사 관련 취재현황이 담긴 경과보고를 올렸다. 제목은 ‘황 선생과 관련한 두 번째 보고’였고 보고일자는 2005년 8월 24일이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은 자료조사를 통한 취재라인의 확장을 넘어서 ‘2라운드 탐색전’. 이것은 이후 진행될 3라운드 ‘근접 육박전’과 4라운드 ‘최종공격’을 위한 것”
위 내용은 한학수 피디가 자신의 저서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할까요』(한학수, 사회평론, 2006) 99쪽에서 밝힌 내용이다. 보면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당시 제보자도 피디도 모두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줄기세포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취재를 하고 있는데 물증은 아직 없었다…. 그런데 저 메모를 보면 물증 없이 심증만 있는 취재진이 쓴 메모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탐색전으로 시작해 육박전과 최종공격까지…. 뭘까, 자신감일까, 적대감일까, 아니면 통상의 업무방식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들이 작성한 취재 경과보고에는 황우석 취재가 시리즈물로 기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프로그램으로서의 완결성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3가지 테마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진상과 폭로 : ‘영롱이 진이 사건’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중심
신화탄생과정 : 황 선생의 수법과 언론플레이
한국생명공학의 현 단계 : 윤리와 시스템” (2005년 8월 24일의 취재경과보고)
나만 궁금했던 건 아닌 것 같다. 과학사학자 김근배 교수는 이 사건을 관찰한 자신의 저서 『황우석 신화와 대한민국의 과학』(김근배, 역사비평사, 2007)에서 물증도 없는 상황에서 취재가 빠르게 진척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추론했다.
“(제보자는) 줄기세포 조작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문제들을 되도록 많이, 강력하게 제기해야 자신의 제보가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다. 예컨대 영롱이는 경쟁 상대의 연구소식에 자극받아 느닷없이 꾸며졌고, 광우병 내성소는 아무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발표됐으며, 한 연구원의 난자는 실험에서의 실수 때문에 지도 교수의 강요로 제공했고, 어린 척수마비 환자를 당장 치료하여 일으켜주겠노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는 것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10월 중순, 미국 피츠버그 의대
그런 상황에서 <PD수첩> 취재진은 미국으로 취재를 떠났다. 2005년 10월 19일이었다. 그런데 이 날 비로소 물증이 확보됐다. 제보자 닥터K가 황 박사팀이 외부(서울대 치과대학)로 분양한 2번 줄기세포 시료의 DNA를 구해 환자의 체세포와 비교한 결과가 이메일로 도착한 거다. 일치하지 않음. 즉 가짜라는 결과가 나왔다. 메일을 열어본 한학수 피디는 처음에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나중에는 두려웠다고 공개석상 인터뷰 자리에서 말했다.
“결과를 받았을 때 조연출 김보슬 PD 하고 저하고 환호했다. 제가 <사이언스> 표지논문 2개를 일거에 뒤집은 거라서…. 5분간 환호했는데 그 뒤로 너무 두렵더라.” (한학수 피디, 미디어스, 2015.4.30)
한 피디는 그때도 지금도 황우석 박사를 희대의 사기극 빌런으로 확신하는 것 같다. 그래서 두려웠다는 말을 했다. 그의 상대가 전 세계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사기극을 벌인 최악의 빌런이었으니…. 그런 확증 편향이 취재 참사로 이어진 것은 다음날인 10월 20일이었다. <PD수첩> 피디들은 미국 피츠버그 대학으로 가서 황우석에 대한 결정적 증언을 해줄 인물을 만났다. 그가 바로 S였다. 황 박사 모르게 가짜 줄기세포를 조작해 온 연구자, 그를 만난 자리에서 한 피디는 이렇게 말했다.
피디 : 저희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황우석 선생님만 다쳤으면 좋겠어요.
S : 다친다니….
피디 : 예, 황우석 선생님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피해가 안 갔으면 합니다.
황에 대해서만 말하라는 회유에 S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S :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그러자 피디는 수위를 높인다.
피디 : 어차피 이제 미국에 오셨고 앞길이 창창하시고, 그래서 저희가 좀 그렇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희가 2005년 그 연구결과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그 말에 S는 방어기제를 작동시켜본다.
S : 황 교수님하고 직접 얘기하시죠. 저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 잘 말씀 못 드리겠는데요.
피디 : …….
S : 지금 녹음하세요?
잠시 어색한 침묵만 흘렀고, 피디는 한 단계 더 수위를 높였다.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검찰수사….
피디 : 저희가 그래서…. 진심으로 이건 진심이거든요. 같은 동년배로서 우리 세대에서 이것이 이럴 일이 아니다. 이건 황우석 박사님만 주저앉히면 된다. 그런 뜻이에요.
S : 정말 죄송한데요. 황 교수님 하고 직접 말씀을 하시죠. 제가 어떻게 말씀을 드릴 부분이 아니라…
피디 : 황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다음 주에 저희가 따로 인터뷰를 할 거고, 검찰수사가 시작될 겁니다.
S : …….
피디 : 그런데 저희가 그거를 황 교수님으로만 정리를 했으면 좋겠어요. 정리를 했으면 좋겠고, 그래서 젊은 분들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요.
황우석만 주저앉히면 된다, 검찰수사가 시작될거다…. 결국 S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S: 다른 데로 가는 게 어떻겠어요?
그렇게 자리를 옮긴 뒤 <PD수첩>은 S로부터 황 교수에 대한 중요증언을 확보한다. 논문 사진 조작이 황우석 지시로 이뤄졌다는 내용이었다.
피디 : 라인 3개를 가지고 사진을 여러 개 찍어서 사진을 11개로 만들었다는 겁니까?
S : 예.
피디 : 누가 시킨 겁니까?
S : 황우석 교수님이 하셨습니다.
피디 : 황 교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까?
S : 네.
2005년 12월 16일 <PD수첩>이 방송을 통해 공개한 당시 인터뷰 녹취영상이었다. 당시 제작진은 취재윤리 위반에 대해 거듭 사과하면서도, 이 날 자신들이 확보한 증언은 사실이었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음을 해명했다. 그런데, 그 후 7년간의 법정공방을 통해 사실관계가 정리됐다. 줄기세포 사기극의 진범은 황이 아니었고, 진범은 저 영상에서 <PD수첩>이 회유한 S였음이. 즉, <PD수첩>은 범인에게 길을 물어 황 박사를 범인으로 몰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확실한 입장표명이 필요해 보인다.
10월 말 서울대 수의대
미국에서 S를 만나고 열흘이 지난 2005년 10월 30일, <PD수첩> 제작진은 황 교수를 만나러 서울대 수의대로 갔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근접 육박전’이 시작된 거다. 그날의 대화는 수의대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는데 황 교수는 이병천, 강성근 교수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과 동석했다. 양측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그 자리에서 한학수 피디는 영롱이 의혹부터 줄기세포 진위여부까지 다양한 의혹을 꺼냈고, 황 교수는 ‘뭐 이런 사람들이 있지’ 하는 식으로 당혹스러워했다. 옥신각신, 그러나 이건 서론에 불과했다. <PD수첩>은 자신들이 황우석을 찾아온 진짜 이유를 들이밀었다. 줄기세포를 달라, 검증해 보자.
“의혹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검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피디의 제안에 황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넘겨주겠다, 검증해 보라. 전혀 뜻밖의 반전이었다.
“(시료) 채취하실 때 그때는 카메라 가지고 들어가셔서 채취하는 거 다 찍으실 수 있게 할게요. 모두 해보시고 그래도 의심이 들면 그거 가지고 방송을 하시든가 아니면 다시 우리한테 의구심 나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시든가….” (황우석 교수의 MBC <PD수첩> 인터뷰, 2005년 12월 15일 방송)
그런 황 교수의 반응에 <PD수첩>도 놀란 것 같다. 한학수 피디는 자신의 저서에서 당시 ‘황 교수도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걸 모르고 있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방송에서는 이후 황 교수의 태도가 석연치 않았다는 점(차일피일 미루거나 줄기세포를 넘겨주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거나, 넘겨준 줄기세포에 약을 탔는지 제대로 DNA 지문분석이 안되었다는 점 등)을 들며 결국 황 교수는 줄기세포를 넘겨줄 뜻이 없었다는 식으로 논리를 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과학적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똑같은 시료를 건네받아 정상적으로 결과를 낸 언론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YTN. 검찰수사결과를 보면 당시 황우석 팀은 <PD수첩>을 전문성 없이 자신들에게 적대심을 가진 이상한 취재진으로 보고 있었고, 그래서 <PD수첩>에게 제대로 된 시료를 넘겨줘도 그 결과가 왜곡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자신들이 믿는 <YTN>에게도 똑같은 줄기세포와 체세포 시료를 넘겨줬다. 일종의 보험을 들어둔 거다. 줄기세포가 진짜라고 확신하는 상황에서, 그런데 <YTN>이 의뢰한 고려대 실험실에서는 정확하게 DNA 지문분석을 했고 결과를 통보했다. 가짜라고. 체세포 공여자와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그때부터 황 박사는 패닉에 빠졌다. 세포에 약을 타서 검증을 방해했다는 주장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진짜 약을 타서 <PD수첩>의 검증을 방해한 사람이 있다. S였다. 그는 황우석 팀이 <PD수첩>의 검증요청에 응해 2,3번 줄기세포의 테라토마 슬라이드를 넘겨주려 하자, 자신의 섞어심기 행각이 들통날 것이 두려워 국제전화로 미즈메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슬라이드에 파라디클로로벤젠이라는 약품처리를 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수사결과 40쪽에 있는 내용이다.
“S는 위 테라토마의 유전자(DNA) 지문분석 시 (자신의) 섞어심기 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미즈메디) K에게 약품처리를 부탁한 것임.”(검찰수사결과 40쪽)
흥미로운 것은 황 교수가 <PD수첩>에게 줄기세포를 넘겨주던 날의 상황들이다. 2005년 11월 12일, 이 날 여러 개의 사건이 동시에 터졌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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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2023년 3월부터 OBS라디오(FM99.9MHz)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를 연출하며 한국PD연합회가 선정한 2023년 5월 ‘이달의 PD상’과 제50회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별명 기후보좌관.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