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변호사, 조경 04
의뢰인이 생각하는 쟁점과 실제 쟁점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법률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업을 운영하는 경우라면 상표권 침해, 임대차 분쟁, 근로 관계, 동업 갈등 등을 마주하게 되고, 개인적으로는 교통사고, 상속, 명예훼손 등 다양한 법률적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고소하는 일도 생기고, 반대로 누군가로부터 소송 제기나 고소를 당하는 일도 자주 발생합니다.
이런 법률적 리스크에 직면해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올까요? 대부분 “문제를 해결해달라”, 즉 승소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사실관계는 변호사가 개입하기 전에 이미 상당 부분 고정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기존 사실관계가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의뢰인이 파악해온 사실관계나 법적 쟁점은 안타깝게도 사건의 핵심을 비껴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동업자 간 분쟁에서 의뢰인은 상대방이 약속한 투자금을 입금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변호사가 사실관계를 면밀히 살펴보니 애초에 동업계약서상 지분 비율과 실제 출자 비율이 달라서 동업계약 자체의 유효성이 사건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쟁점인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이혼 사건에 있어서 그 쟁점이 양육비 계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변호사가 해당 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니 명의신탁된 부동산의 권리관계가 사건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인 경우도 있습니다.
의뢰인은 자신이 경험한 사건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적으로 중요하게 느껴지는 부분에 집중하게 되고, 법률적으로 결정적인 사실관계나 증거는 놓치기 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변호사의 첫 번째 역할은 바로 이렇게 산재한 사실관계 속에서 법률적으로 의미 있는 쟁점을 정확히 추출하고 정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판사는 판례를 벗어난 판결을 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재판부에 따라서 사건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판사들은 ‘기존 판례’를 따르는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 성향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특성에 가깝습니다.
1심에서 내린 판단은 2심에서 곧바로 비판과 검증의 대상이 됩니다. 어떤 판사도 기존 판례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기존 판례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있다면 내외부에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러한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판사가 ‘기존 판례’를 벗어난 판결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법을 공부하고 사법 시스템의 권위를 만드는 데 노력해온 판사들이 자신이 ‘법적 안정성을 깨트리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법원 실무수습을 하던 시절, 부장판사님께서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대법원 판례와 다른 결론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사기에 가까운 일이다”라고까지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렇게 재판부의 자의적인 판단을 변수에서 제외한다면, 결국 사건의 결론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존에 이미 의뢰인이 만들어놓은 사실관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변호사를 사건화 이후가 아니라 사건화 이전에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승패를 뒤집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목표들이 있습니다
변호사의 역할이 반드시 승소와 패소를 완전히 뒤집는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형량을 낮추거나 손해배상액을 줄이는 것에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형사사건에서 실형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변호사의 적절한 변론과 정상참작 사유의 제시를 통해 집행유예를 받아낼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민사사건에서도 패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손해배상액을 최소화하거나, 분할 지급 등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한 조건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성과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건 진행 자체를 원만하게 돕는 것도 변호사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소송은 단순히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비용, 심리적 부담이 수반되는 과정입니다. 변호사가 절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며, 적절한 시점에 화해를 이끌어낸다면, 이것만으로도 의뢰인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건이 되기 전에 만나는 변호사가 비용을 아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건의 결론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면, 사건화가 되기 이전 시점에 미리 법률적 관점을 검토하거나 변호사와 상담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불리한 사실관계가 고정된 후에 변호사를 만나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 사업 구조를 설계하기 전, 분쟁의 조짐이 보이는 초기 단계에 변호사와 상담한다면, 애초에 분쟁을 예방하거나 유리한 사실관계를 만들어둘 수 있습니다.
“변호사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에 사전 상담을 미루다가, 결국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큰 손해배상을 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복잡한 법률 절차를 대신 처리하는 업무
변호사를 선임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잘 모르는 복잡한 법률 절차를 변호사가 대신 처리해주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명도소송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명도소송은 단순히 소장을 제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선 소장 제출 이전에 임차인이 소송 중에 제3자에게 점유를 이전하여 강제집행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신청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가처분도 집행을 통하여 진행해야 하는데, 한 번도 그러한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사람이 이를 독자로 진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년에 가까운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명도소송의 소장 제출 후에도 상대방의 답변서나 준비서면에 대응하여 반박 서면을 작성해야 하고, 변론기일마다 법정에 출석해야 합니다. 승소가 확실시되는 경우에도 판결 확정 후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해야 실제로 건물을 인도받을 수 있으며, 강제집행 과정에서도 집행관과의 협의, 집행 날짜 조율, 현장 입회 등 여러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경우 해당 업무에 다른 직원(또는 가족 구성원 중의 1인)을 투입하여 기존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보다는, 변호사가 처리하는 것이 개인이나 회사의 업무 진행에 있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맺음말 – AI 시대의 변호사
AI 시대에, 법률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AI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감정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부분과 법률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구분해내는 것, 산재한 사실관계 속에서 핵심 쟁점을 추출하는 것, 사건화 이전에 어떤 사실관계를 만들어야 할지 조언하는 것, 이런 일들은 단순한 법률 지식의 적용을 넘어서는 영역입니다.
결국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판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의뢰인의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하며, 어떤 전략을 취할지 판단하는 것. 이것은 법률 지식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오랜 경험과 통찰, 그리고 의뢰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일입니다.
AI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변호사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찾고,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판단이고, 지식이 아니라 통찰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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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_ 농대 조경학과 04학번으로 전자상거래 기업에서 6년간 근무 후, 2021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 기재된 사례는 법령과 판례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의 가상의 사례임을 밝혀드립니다.(jongmin04@gmail.com)
Last modified: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