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승용(농화학과 87학번)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접한 곳은 “김어준의 시사 유튜브 「겸손은 힘들다」”였다. 고정 코너 중의 하나로 매주 두어 권의 책을 소개해 주는 코너가 있는데, 김어준의 가벼움과 책 소개자의 진지함이 극단적인 부조화를 이루어 대단히 어색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어가는 코너이다. 내가 이 책 소개에 꽂힌 지점은 정치 예능을 표방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PD가 작가라는 것, 책 소개자가 그 예능을 재미있게 봤다는 점, 꽤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프로그램이라는 점 따위였다. 속으로는 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인데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더 관심을 끌었던 것 같기도 하다. 투표로 최종 리더를 선정하는데, 리더로서 능력이 있어 보이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한 그래서 많은 시청자가 선출될 것으로 보였던 사람이 있었는데 예상을 뒤엎고, 어딘가 리더십이 부족해 보이고 배려를 강조했지만 주장을 그리 설득력 있게 내세우지 못했던 사람이 최종 리더로 선정되었다는 반전이 있었다는 것도 관심을 끌게 했던 지점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찾아보니 웨이브(wavve)라는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OTT)에서 자체 제작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요즘에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는 정치나 이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대단히 망설여진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이 “사상검증구역”이라고? 게다가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예능·교양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고? 책을 검색해 보니 평점이나 리뷰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샀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의 뒷이야기 정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한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사회학적 시각에서 써 내려간 일종의 대중 사회학 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니, 2012년 MBC 예능국에 입사했다가, 2014년 정부의 언론탄압에 항의하다 해직되었고, 대법원 판결로 2년 뒤 복직했다는 이력이 예사롭지 않다.
먼저,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진 한국 사회의 정치 구조에 대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보수니, 진보니, 중도니 그 명칭이 어떠하건 다른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하거나 상대 의견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다수의 정치적 성격이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유사한 정보를 습득하거나, 확인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정치적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지 않는다. 커뮤니티의 정치적 지향과 상충되는 의견을 제시했다가는 탈퇴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세태가 되어 버렸다. 오히려 유희적인 성격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저자가 정치 예능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근거이다.
MBTI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내 생각과 거의 똑같다. MBTI가 개개인의 특성을 모두 설명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남녀라는 두 가지 구분, 4가지 혈액형(A, B, O, AB) 구분 보다, 16가지 구분은 좀 더 정교하고 나름 과학적으로 보인다. MBTI가 4가지 요소에 대한 상대적인 위치를 판단함으로써 성격의 유형을 드러내려 했다는 논리적 구성이 그 결과에 권위를 부여하는 측면도 있다. MBTI의 4가지 요소는 에너지의 방향(Extraversion-Intraversion), 정보 인식 방향(Sensing-iNtuition), 판단 기준(Thinking-Feeling), 생활양식(Judging-Perceiving) 등이다. 저자(더 커뮤니티 예능 제작진)는 MBTI의 방법론을 정치 또는 사상적 유형에 적용한다. 정치는 좌파와 우파로, 계급은 부유와 서민으로, 젠더는 페미니즘과 평등주의로, 개방성은 전통과 개방으로 구분한다. 책에는 구분 기준을 선택한 이유, 각각의 명칭을 부여한 이유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이 정치 MBTI 테스트는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라는 누리집(thecommunity.co.kr)에서 누구든 (회원가입 절차 없이) 해 볼 수 있다. 다른 구분은 수긍이 가는데, 결과에 대해 갸웃거리게 되는 점은 계급 측면에서 70년대 이전에 태어난 세대는 대부분 서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집에 쥐가 있었냐는 것이 서민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문항인데, 90년대 생인 저자에게는 집에 쥐가 있다는 것을 가난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폭넓게 인정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합의하는 것이다. 권위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권력이 결정하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고, 부정이든 긍정이든 신속하게 그 성과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대개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홍보되었을 것이다.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아무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편익이 크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 어렵게 되었다. 개개인이 자신의 처지에서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사회에서 변화는 절대적이건 상대적이건 누군가의 희생을 동반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사회적 합의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많은 이들이 책이나, 석학, 정치 지도자가 다양한 사회적 현안을 단숨에 해결하는 대안을 기대하지만, 민주화된 현대 사회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 지점에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鄕愁)가 확산되는 틈새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를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까? 정답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보다 행동이 훨씬 어려운 주제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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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승용 _ 학부를 졸업하고 수년간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느낀 바가 있어 농경제사회학부에서 농산물 유통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농업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직장이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나주로 이사해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gouksy@daum.net)
Last modified: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