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32 오후 142호(2025.11)

[사막의과학자]
저는 당시 국익 생각뿐이었습니다.

노광준 OBS 피디, ‘오늘의 기후’ 뉴스레터 발행, 농화학 88

오염사고에 대해 이런 식의 반론도 있다. 세포 실험실에서 오염사고는 흔한 일인데 뭘 그걸 갖고 호들갑을 떠느냐고. 그런 시선이 당시 이 사건을 들여다본 서울대 조사위원회와 검찰 시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사건을 정리한 많은 기록들도 오염사고를 별거 아닌 것처럼 쓱 넘어간다. 그러나 당시 서울대 앞에서 초밥집을 운영하던 여사장님의 기억은 다르다. 그녀는 2017년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겨울이었나, (황 교수님이) 서울대 교수회관 같은 데서 단체 회식을 한다고 하셔서 초밥 100인 분을 부랴부랴 해갖고 가져갔어요. 자세하게는 말씀 안 하셨지만 실험이 잘되고 있다고 서로 자축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황 교수님이 어디서 전화를 받더니 안색이 너무 안 좋아지시는 거예요. 실험실에 큰일 났다고, 지금 가봐야겠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죠. 교수님들은 곧바로 학교로 들어가셨고, 자리는 거기서 파장됐어요. 오염사고가 났다고 들었어요.”

당시 오염사고는 청와대까지 보고될 정도의 중대 사안이었다. 너무 잘 자라서 중간에 버리고 다시 키워야 할 만큼 상태가 좋던 줄기세포들이 한순간에 다 죽어버린 거다. 이를 두고 어떤 과학자는 ‘얼마나 황우석의 실험실 관리가 개판이었으면 그 모양이냐’며 혀를 찰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만일 2008년 4월 8일에 열린 417호 법정의 광경을 직관했더라면 분명 표정이 바뀌었을 거다. 법정에는 서울대 의대 교수가 나왔다. 그는 황 박사와 함께 공동연구를 하다 매우 비판적 입장으로 선회한 안규리 교수였는데, 그런 그에게 황우석 측 변호인이 질문을 했다.

변호인 : (줄기세포의) 메인 라인 교체는 세포를 배양하는 연구실에서 반드시 연구 책임자(황우석)에게 보고해야 하는 사안이죠?

안규리 교수 : 맞습니다. 세포배양연구실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변호인 : 그런데 (황우석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S와 당시 서울대 줄기세포 팀장이 메인라인을 교체한 것으로 본인들이 직접 공판에 출석해 진술했습니다.

안규리 교수 : 사실이라면…. 메인라인 교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 그랬다. 정상적인 실험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메인라인’은 줄기세포주의 원본이다. 줄기세포는 양분이 공급되는 한 무한증식을 거듭하는 세포이기에 한 번 만들어지면 대를 이어 증식해 가며 가문을 보존한다. 그런 원본을 연구책임자(황우석)한테 보고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교체해 버린 거다. 이 와중에 오염이 발생했고 결국 미국인 당뇨환자의 세포를 포함한 4번, 5번, 6번, 7번 세포까지 다 죽어버린 거다.

변호인 : 메인라인 교체 후 실험실 오염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런 사실을 증인은 알았나요?

안규리 교수 : 몰랐습니다.

변호인 : 오염사고가 난 뒤 3일 동안이나 황우석에게 보고하지 않고 늑장대처를 한 S는 술자리에서 다른 동료에게 ‘이걸 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뻐기며 말한 사실이 있는데 이런 사실을 증인은 알았습니까?

안규리 교수 : 몰랐습니다.

더구나 4, 5, 6, 7번 세포는 오염사고 전에 S가 무단반출을 했고, 당연히 해야 할 동결보관조차 하지 않았음이 수사결과 밝혀졌다.

변호인 : 증인의 상식으로는 NT-4, 5, 6, 7이 수립된 후 반드시 여유분을 만들어 냉동 보관해야 하죠?

안규리 교수 : 맞습니다. 반드시 냉동 보관해야 합니다.

변호인 : 그런데 S는 황우석에게 보고도 없이 여유분을 미즈메디로 반출했고, 그 뒤 미즈메디에서 가져온 세포로 보고 없이 메인라인을 교체했습니다. 그 후 오염사고가 나 3일간 이를 방치하다가 사후 보고를 했는데, 이런 식으로 작정하고 속이면 속을 수밖에 없죠?

안규리 교수 : 그랬겠습니다. 저는 오늘 처음 보게 되는 사실입니다.

그랬겠습니다…. 누구라도 당시 황우석 실험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았더라면 그 서울대 교수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30번 넘게 417호 법정을 갔지만 맨 앞줄 기자석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1심 판결 때는 갑자기 너무 많은 취재진들이 몰렸지만, 그들은 대부분 검찰이 사전에 제공한 검찰기소 요약자료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기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논란 당시 한 유력언론의 기자가 줄기세포 전문가를 찾아갔다. 비공개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당시 황우석 팀이 배양한 배반포들의 세포사진이었다.

“기자는 제게 ‘교수님, 이건 굉장히 중요한 아이템이니 있는 그대로 말씀하여야 합니다. 저는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만 냅니다’라며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뭔가 들여다봤더니 당시 황 교수팀이 수립한 배반포 수준에 관한 세포 사진이었어요.”

배반포는 줄기세포 직전 단계의 세포덩어리들로, 배반포의 상태가 줄기세포 성공여부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사진을 본 전문가는 깜짝 놀랐다.

“깜짝 놀랐죠. 저도 처음 보는 사진이었거든요. 그리고는 기자분에게 말해줬어요. 여기 사진에 찍혀있는 배반포 상태로만 보면 충분히 줄기세포로 수립될 수준이라고. 저는 본 그대로 과학적 소견을 말해줬어요.”

지난 2007년 10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생명윤리 토론회에서 줄기세포 전문가 P교수가 한 발언이다. 충분히 줄기세포로 수립될 수준…. 그러나 P교수의 말은 뉴스로 올라가지 않았다. 둘 중 하나다. 결국 안 썼거나, 썼는데 킬 당했거나. 기사를 쓰고 말고는 저널리즘의 영역이지만 기사를 내보낼지 말지 결정하는 건 정치의 영역 같다. 만일 그 기자가 뚝심 있게 기사를 썼다고 가정해 보자. 데스크의 반응은 이렇지 않았을까,

“니 기사 좋아, 좋은데, 황우석이 줄기세포 지금 하나라도 있냐? 하나라도 있으면 가는데, 하나도 없으면 이거 그냥 황빠언론되는 거야. 감당할 수 있겠어?”

당시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실존하는 1번 줄기세포(NT-1)의 존재조차 부정하면서 ‘처음부터 줄기세포는 한 개도 없었다’라고 단언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누구한테 승산이 있을지 계산기부터 두드려보는 공학자들한테 그건, 황우석 측의 승률이 0임을 공언하는 일종의 사형선고였다. 이 정도로 각이 잡히면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못 쓴다. 못 내보낸다. 내가 주목하는 건 그럼에도 쓴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사건은 레거시 미디어가 저물고 유튜브 세상이 오는 예고편이었는지 모른다. 뒤에 다루겠다.)

다시 2005년의 황우석 실험실, 충격적인 오염사고 소식을 접한 황우석 박사는 고민 끝에 섀튼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1월 15일 인도에서 열린 인도 영장류 센터 개소식 자리였다. 그는 이날 함께 참석한 제럴드 섀튼 교수에게 실험실 오염사고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섀튼 교수는 논문의 교신 저자(무한 책임을 지는 대표 저자)를 맡아 자신이 직접 미국에서 논문을 작성하겠다고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황 박사의 말을 들은 섀튼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오염사고야 다른 실험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고 줄기세포를 못 만든 것도 아니니 논문을 강행하자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한다. 검찰수사과정과 법정공방 중에 황 박사 측이 일관되게 주장한 말이다. 나중에 황 박사에게 이 부분을 좀 더 확실하게 질문을 했더니 그는 내게 이렇게 답했다.

“제가 오염사고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하고 섀튼 교수가 그렇게 조언한 것은 사실입니다.” (황우석 박사, 2015.11.5. 전화인터뷰)

하지만 황 박사는 이내 이렇게 말했다.

“비록 섀튼 교수가 그렇게 조언하긴 했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저의 결정이었죠. 이제 와서 섀튼 교수 탓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만일 그가 그 대목에서 계속 다른 교수 탓을 했더라면 아마 내가 그에 대해 이렇게 오랫동안 쓰는 일은 없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인정하고 있었다. 지난날의 기자회견뿐 아니라 이후 법정에서도, 그리고 실험실에서도….

다시 2005년으로 돌아가면, 결국 황 박사는 오염사고로 죽은 4개의 줄기세포를 포함해 논문작업을 강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지시를 내린다. 만일 이때 그가 정직하게 ‘4개를 만들었지만 오염사고로 죽었음’을 명시하며 죽은 세포의 사진과 데이터를 기록했더라면 그는 정말로 이 사건에서 매우 자유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4개의 줄기세포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기술했다. 당연히 그 세포들의 사진과 데이터가 조작됐다. 이게 그의 과오였고, 훗날 그가 논문조작에 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 원죄로 작용한다.

변호인 : 피고인(황우석)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수립에 관한 기술을 확신한 나머지 이미 수립된 2개의 줄기세포 및 오염사고로 죽은 4개의 줄기세포와 배양 중이던 줄기세포를 포함시켜 11개의 줄기세포가 수립된 것으로 논문을 작성했죠?

황우석 : 예.

변호인 : 결과적으로 사진과 데이터를 편법으로 사용했거나 과장한 것은 잘못이라는 걸 인정하죠?

황우석 : 예

그의 법정진술을 들으면서 ‘왜?’라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반드시 1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어야 논문이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염사고가 일어난 이후에도 2개의 줄기세포가 남아있었다. 오염사고 이후 6개의 줄기세포들이 새로 배양되었고, 수사기록에 따르면 연구팀이 <사이언스> 논문 투고의 최종 마감일이던 2005년 4월 25일 전까지 수립한 줄기세포는 모두 12개였다. 여기서 오염사고로 죽은 줄기세포 4개를 제외해도 7-8개가 되는데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성과였다. 테라토마 검사까지 마친 두 개의 줄기세포로만 썼더라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그는 굳이 죽은 4개의 줄기세포까지 포함시켰을까?

“욕심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국익적 측면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욕심과 국익이 무엇이었는지 그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추정컨대 그는 실험데이터를 작성해 미국에 있는 섀튼 교수에게 전달해 논문작성을 일임하면서, 한편으로 노무현 정부와 함께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임상시험을 주도할 <세계 줄기세포 허브>를 한국에 만들 구상을 구체화시켰던 것 같다. 유럽도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국이 이 분야를 주도하는 꿈같은 일이 가능하려면 미국인 당뇨환자의 세포를 포함해 가장 배양상태가 좋았던 4, 5, 6, 7번 줄기세포 성과가 꼭 필요했던 것 아닐까.

2005년 5월 19일, 영국 런던에 있는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에서 두 번째 논문이 발표됐다. 현장에 있던 <BBC>와 <더 타임즈>, <CBS> 등 세계 최고의 언론사들이 일제히 타전했다.

“백신이나 항생제 발견보다 더 획기적인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 말을 남긴 공동연구자 섀튼 교수는 분명 이 논문의 공동교신저자였고 사진조작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논문작성자였지만, 논란 이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오히려 논란 전보다 더 많은 지원금을 받으며 연구했다. 그 이유에 대해 미국 언론은 그가 논란 직전에 탈출하며 그 또한 이 사건의 제보자 지위를 얻었다는 식으로 평한다. (그 과정은 뒤에 쓴다.)

논문의 가장 큰 성과는 난자를 제공하지 못하는 남성의 세포로도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효율 진전도 큰 성과였지만 논문의 핵심은 남녀노소 누구나의 세포로 재생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것에 있다. 즉, 다음 스텝은 임상 치료임을 시사한다.

두 번째 <사이언스> 논문 발표 이후 미국은 제대로 불타올랐다. 이름하여 황우석 쇼크, <뉴욕타임스> 1면 톱,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 저널>는 물론이고 <CBS>의 현장 생중계까지…. 미국 의회에서는 정치 쟁점으로 부각됐다. 부시 행정부의 줄기세포 규제가 미국의 연구경쟁력을 뒤처지게 한다는 공방이 점화된 거다.

“줄기세포연구는 유망한 새로운 첨단의학으로 미국이 이 분야에서 뒤처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의 말이다. 그 타겟은 부시였다. <CNN>은 하루 종일 황우석 연구성과를 보도하면서 미국 내 찬반 논쟁을 다뤘다. 미국 하원은 그동안 계류되어 온 배아줄기세포 지원법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자 5월 21일,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은 의회에서 어떤 법안이 와도 배아줄기세포를 지원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황 박사 연구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나는 복제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복제를 용인하는 세상이 걱정된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줄기세포 지원론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5월 24일 미국 하원은 배아줄기세포 지원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날 아침 <뉴스데이>에는 ‘오늘 줄기세포에 찬성표를 던져라’는 기고문이 실렸고 <LA 타임스>의 논설위원은 부시대통령에게 ‘대통령은 신에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보고하는 것임을 명심하라’고 일갈했다. 미국의 한 내과의사는 <뉴욕타임스>에 장문의 편지를 보내 부시 대통령을 통렬히 성토했다.

결국 하원은 찬성 238표(반대 194표)로 배아줄기세포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시와 같은 당인 공화당에서도 50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진 거다. 대학들과 주 정부들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가장 줄기세포 연구지원에 적극적이던 캘리포니아주뿐 아니라 뉴저지, 코네티컷, 미주리, 메사추세츠, 일리노이, 메릴랜드 등이 줄기세포 및 배아복제 연구 지원에 나섰다. 미국 내 주요 대학으로 하버드대학, 스탠퍼드대학, 컬럼비아대학, 캘리포니아대학 등에서 이를 위한 연구기관이 설립됐다. 두 건의 <사이언스> 논문이 줄기세포를 둘러싼 미국내 여론지형을 완전히 바꿔버린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태풍의 눈이 생겨나고 있었다. 2005년 6월 1일, <MBC> 시사프로그램 제보창에 글이 한 편 올라왔다.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을 황우석 팀의 전직 연구원으로 소개한 ‘닥터 K’의 제보였다.(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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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2023년 3월부터 OBS라디오(FM99.9MHz)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를 연출하며 한국PD연합회가 선정한 2023년 5월 ‘이달의 PD상’과 제50회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별명 기후보좌관.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