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24 오후 142호(2025.11)

[나 이렇게 산다]
성공한 사람은 이기적이다.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산을 지키는 것은 못생긴 나무였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본성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가치있게 여겼던 장자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없는 것의 쓸모있음’이란 역설의 지혜를 가르쳤다. 못생긴 나무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쓰임이 늦었다는 것뿐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 가족을 끝까지 사랑하고 보살핀 것은 나보다 두살 아래인 동생 연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희는 머리가 좋아서 남보다 계산을 빨리 해내곤 했다. 그러한 그녀가 인간관계에서는 늘 계산보다는 인정이 앞서서 사람들을 따스하게 보듬어주었다.

머리 좋고 예쁜 맏딸인 언니와 까탈스러운 둘째인 나를 제치고 늘 엄마를 제일 생각하고 엄마의 고생을 덜어드리려고 노력한 사람은 연희였다.

서울대 농대의 농업 수련원 식당에 다니는 엄마를 같이 따라다닌 것은 연희였다. 가엾을 정도로 비쩍 말랐으면서도 엄마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마음에서였다.

우리 형제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는 광주리 행상을 하셨다. 포도나 열무 등을 광주리에 가득 담아서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파셨다.

저녁 무렵 행상을 마친 엄마가 동네 어귀에 보이면 재빨리 달려나가 광주리를 받아 이고 온 사람은 늘 세 자매 중 가장 어리고 비쩍 마른 연희였다.

성공한 사람은 이기적이다

“너 이기적이지?”

“어! 어떻게 알았어?”

며칠전이었다. 서둔야학 친구인 S와 통화하던 중 그녀는 단정적으로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집안이 가난한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이기적이라고. 집안의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신경 쓰고 챙기다보면 성공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성공한 사람은 다른 거 신경 안쓰고 자신에게 집중했기에 성공 할 수 있었던 거라고.

맞는 얘기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글을 쓰며 자신을 성찰해보니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비루한 현실을 하루 속히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기품 있고 우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를 하여 성공을 해야만 했다. 내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때 우리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그 힘든 공장 일을 하루 12시간씩 하여 돈을 번 것은 연희였다. 연희는 중노동인 공장 일을 10년이 넘도록 하였다.

동생들이 넷이나 됐다. 내가 많은 동생들을 귀찮아할 때 그 동생들을 보듬어주고 챙긴 사람은 연희였다. 나와 열살 차이나는 막내 동생을, 낳은 분은 엄마지만 키운 사람은 연희였다. 연희는 서둔 야학도 마치지를 못했다.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자장 자장

그녀는 공부가 하고 싶어서 손으로 막내의 눈꺼풀을 쓸어내려서 억지로 잠을 재워놓고 방문을 살며시 열고는 했다. 허나 번번히 막내가 알아채고는 ‘앵’하고 우는 바람에 야학도 마음대로 못다녔다. 막내가 껌 딱지처럼 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니 마음 약한 연희는 동생을 떼어놓고 야학에 갈 수 없었다.

내가 경기도 안중에 있는 안일여고에 근무할 때 한 살 백이 어린 내딸을 키워준 사람은 동생 연희였다. 막내동생을 키웠던 연희는 막내의 두 딸과 아들. 셋이나 되는 자녀들도 엄마와 공동으로 키워주었다.

아들이 일본에 있는 게이오대 법학과에 재학 중일 때 일이다. 납부금을 내야 하는데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다른 형제들이 모른척 하거나 능력이 되지 않을 때 그 돈을 빌려준 사람도 동생 연희였다. 내 손에 들어온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늘 쓰기 바쁘니 저축할 새가 없었다. 나는 예쁜 옷도 입어야 하고 좋은 책도 사봐야 했으며 음악회를 쫓아다니며 감상했다. 소위 명화라는 영화는 꼭 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문화생활을 하지 않으면 숨통이 막혔던 것이다.

연희 손에 들어온 돈은 온전히 그녀 것이었다. 돈을 허투로 쓰는 일이 없는 연희는 돈을 살뜰히 모았다가 내가 필요할 때마다 빌려주어 내 숨통을 틔어주곤 했다. 돈은 버는 것도 힘이 들지만 지키는 것은 더 힘들다. 우리집은 서울의 변두리 동네에 있는 집 한 채도 거의 은행 빚으로 구입했다. 알뜰살뜰 살아온 연희는 두 채의 집을 수원에 마련해 놓고 현금도 억 단위로 모아놓고 살고있다. 폐가 좋지 않았던 그녀의 남편도 이제는 건강해졌다. 성실하고 착한 그녀가 남편 몸에 좋다는 식품은 모두 구해서 열심히 웰빙 식단을 차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음식 레시피를 적어 놓은 노트가 여러권 있다. 웰빙 음식이 방송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다. 배운 것을 응용하여 정성껏 음식을 만드는, 늘 노력하는 주부이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이 생각난다. 그는 첫째 딸과 둘째 딸을 예뻐해서 재산을 두 딸에게만 물려 주었지만 끝내는 두 딸들에게 버림받고 못났다고 구박했던 셋째 딸에게 늙은 몸을 의지하게 된다.

“연희야”

우리가 한창 자랄 때 어머니는 궂은 일 시킬 것이 있으면 늘 연희만 부르셨다. 어머니에겐 착한 연희가 제일 만만했던 것이다.

지금 97세가 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사람은 동생 연희이다. 살아오는 내내 집안의 기둥이었던 연희의 기둥 역할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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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aeraniris@naver.com)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