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14 오후 142호(2025.11)

[기고]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과 국가배상 청구소송

안병권 김상진열사의거 5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장, 농생물 79

강제징집·프락치강요 공작 사건은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류, 반헌법 범죄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6월 3일 한일 회담 반대, 교련 반대, 유신체제 반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수많은 청년 학생들을 형사 구속하는 것과 더불어 헌법과 병역법을 위반하면서 강제 격리하였다. 전두환부터는 더 나아가 보안대에서 온갖 회유와 고문, 교육 후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면서 인간의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에 직면하자 군사독재정권은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김영삼까지 강제징집과 녹화, 선도, 마파람, 921, 청미 등 공작 이름을 바꿔가며 수많은 불법으로 우리의 청춘을 짓밟았다.

불법 강제징집은 1, 연령 신체 조건에 상관없이 2, 병역법에 있는 증명 절차를 무시하고, 3, 경찰 등 수사 기관에서 연행, 강제로 납치, 감금, 입영 조치한 후 최전방에 배치 수용하였다.

.

청와대의 지시로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대학 당국이 역할 분담하여 징집 대상자를 선정, 징집 조치하였고, 보안 기무사령부는 징집자들의 감시와 민주화운동 조직 와해를 위한 프락치강요 공작을 자행했다. 그 피해자만 5천 명 이상이며, 그로 인한 정신적이며 신체적인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독재정권이 자행한 민주화운동 탄압 명분은 민주화운동 배후에 북한 공작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강제징집된 청년 학생들을 간첩 취급하여 보안 기무부대로 불법 연행, 감금하고, 7일에서 60일까지 고문과 회유를 통해 녹화공작을 자행했다. 이어서 학생운동 조직, 노동운동 조직, 종교운동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한 프락치활동을 강요하였다. 이 반인류적 범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20명의 청년 학생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군대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제대 이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분들의 경우는 아직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청년 학생들의 군 의문사에 대한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안병권(농생물79)의 경우

보안사령부 존안카드(총 48페이지, 제대 이후까지 사찰감시)

나는 1981년 서둔야학 교사로, 학도호국단 기획부장으로 활동했다. 학내시위 현장에서 적극 가담자로 이승우, 이강철 등 79학번 6명이 지도 휴학으로 강집당했다. 그 건으로 나는 무기정학 조치를 당했다. 1년간 학교 밖에서 활동하고 1982년 가을학기에 복교했다. 해를 넘겨 이듬해 1983년 6월 8일, 80학번팀 ‘전두환 군부독재 타도’ 시위가 학내에서 벌어졌다. 6월 9일, 탑동 자취방에서 시위기획 혐의로 긴급체포되어 수원경찰서 보안분실로 연행되었다. 나흘 동안 조사받고 6월 13일 오전, 지프차로 보안대 요원과 경찰 1명의 동승하에 의정부 101보충대로 강제입대했다. 부모님이나 학우들의 얼굴을 볼 틈도 없이 전격적이었다. 당일 오후 철원, 김화 백골 3사단 신병교육대로 단독 입영했다. 이병 때인 1983년 10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흘간 사단보안대에서 조사, 회유, 폭행과 더불어 녹화공작을 강요받았다. 1985년 8월 15일 전역했다. 전역하자마자 가을학기 등록하고 그해 10월, 서울 구로구 시흥2동(현재는 금천구)에 방을 얻고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지역운동을 병행하면서 1986년 여름학기 졸업했다. 이후 10년간 시흥동과 구로지역(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조직활동했다.

강제징집·녹화공작 국가배상 청구소송

반인륜적 국가범죄 강제징집, 프락치 강요공작 사건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의 상처 치유는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권고 사항의 이행을 통해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보안사 존안자료’ 관리문건으로 공식 확인된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피해자는 2,921명이며 그중 서울대 피해자는 450명이다. 여기에 민간인이나 여성 신분으로 조사받는 분, 65년 1차 위수령부터 박정희 정권하 강집자 등을 합치면 모두 700여 명에 이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공익·인권소송 일환으로 강제징집·녹화선도 공작 피해자들의 법적 명예회복을 위해 강제징집변호인단을 구성하였고, 2023년 11월 1차 판결을 시작으로 현재 4차 소송 진행중이다.

‘서울농대 강집 피해자들(김공림열사/80학번 동생 포함)은 현재까지 확인된 18명이 단톡방을 만들고 ‘서울대 강집모임’(안병권공동대표)과 연계, 사안별, 개인별로 나누어 소송을 진행중이다.

프락치강요공작 관련 판결을 보면 2023년 11월 22일 서울중앙지법 첫 번째 판결에서 ‘프락치 강요공작’의 피해배상금으로 9천만원을 지급할 것과 국가의 사과를 결정하였다. 이 판결은 법무부 항소 포기로 확정되었다.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강녹진), 서울대 강집모임, 고려대 강집피해자모임은 성공회대 평화박물관(한홍구교수)과 업무협력을 통해 불법징집·프락치강요공작 기록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 피해자 및 의문사 가족 등 관련자 채록(영상+텍스트)

2. 논문집 작성

3. 증언집 출간

4. 다큐멘터리 제작

5. 영상작업(현장촬영 및 홍보콘텐츠)

사업비용은 소송배상금 지급시 변호사비용(5.5%, 부가세포함) 외에 소송당사자들이 각 소속모임에 기부하는 기록화사업 출연금(5%)으로 충당하고 있다.

나는 2024년 성공회대 한홍구교수팀과 함께 제2기 진화위 ‘강집피해자 구술·채록 용역사업’에 참여하여 100여 명을 영상·기록 촬영하였다. 이어 올해부터는 피해자 및 의문사 가족 채록 및 영상촬영 기록화사업팀을 맡아 일하고 있다. 팀구성은 <1975.김상진> 다큐멘터리 제작팀(안병권감독, 장영철PD, 최영식PD, 김숙영작가)이다. 자료기록 및 영상표출은 평화박물관과 유튜브 ‘반국가폭력TV(민주화운동)’로 실행하고 있다.

합동추모제(2025)_불법강제징집 프락치강요공작 희생자_20

2025년 10월 25일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불법 강제징집·프락치강요공작 희생자 합동추모제를 진행했다. 군 의문사 당한 20위 영정들을 모시고 용산에서 서울역까지 ‘기억 행진’을 했다. 뜨겁고 울컥한 마음으로 열사들의 목숨값을 기억하고 지금 할 일과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서 시민들과 함께 뜻을 모으고 연대했다.

피해자는 수천 명인데 가해자는 특정되지 않고, 진실은 여전히 묻혀있다. 국가의 공식사과도 아직이다.

죽음으로 침묵 당한 동지들의 외침을 이어받아, 제노사이드에 준하는 국가폭력범죄의 진상을 낱낱이 밝힌다. 가해자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온전히 되찾을 때까지 우리 투쟁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용산합동추모제 분향소
기억행진(용산에서 서울역까지)

.

안병권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