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환경재료과학 08
정권이 바뀌어도 반복되는 기시감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김상곤 장관의 개혁은 일찍이 좌초되었고, 이후 교육부는 제도 관리에만 머무는 부처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번 정부 역시 같은 패턴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윤석열 정부는 경제학자 이주호를 장관으로 임명하더니, 이번에는 건축학자를 교육부 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 교육 전문가는 정말 없는 것인가. 600만 명의 학생과 40만 명의 교원을 포함한 교육 공동체 전체를 책임질 자리에, 왜 교육계에서 오랜 경험과 내공을 쌓은 인물들은 번번이 배제되는가. 왜 정권마다 외부에서 ‘파견된’ 인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가.
이번에 지명된 이진숙 후보자는 건축학자 출신으로, 충남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해당 위원회는 4대강 사업을 측면에서 지원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구다. 총장 재직 당시 그는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였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충남대 의대 정원을 기존 110명에서 무려 410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대 강의동 신축이나 실습 인프라 확충 등 최소한의 기반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이 추진됐고,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이 사안은 감사원 감사 대상에 올라 있으며, 결과적으로 정책은 요란했지만 실행은 허술했다. 이 후보자는 줄곧 정권의 기조에 충실히 맞춰온 ‘집행자’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후보자의 삶의 궤적은 대한민국 공교육의 가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는 두 자녀 모두를 조기유학 보냈고, 그중 한 명은 당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위반한 방식으로 출국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법령은 자비 유학을 중학교 졸업 이상 또는 부모의 해외 장기 체류를 조건으로 허용하고 있었지만, 당시 이 후보자 부부는 모두 국내에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공교육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고, 그 가치와 맥락을 체화하지도 않은 인물이 공교육의 수장을 맡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혹시 또다시 외부자의 시선으로 파괴적 혁신을 밀어붙이겠다는 발상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재명 정부의 이번 인사는, 정부가 교육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육은 더 이상 사회적 개혁의 중심이 아니다. 그저 통제하고 관리할 대상, 행정적 과제로 전락해 버렸다. 문재인 정부 말기와 다르지 않은 기조다. 차라리 윤석열 정부는 출범 당시 교육을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천명하기라도 했다. 물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의정 갈등만 키운 채 좌초되었고, 늘봄학교는 사실상 리박스쿨이라는 사상교육의 침투로에 불과하였으며,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는 ‘AI’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실제로는 인공지능 기능이 탑재되지 않은 콘텐츠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이 후보자를 둘러싼 논문 표절, 제자 논문 도용, 조기유학 관련 위법성 등의 문제는 어쩌면 더 큰 문제의 징후일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왜 이런 인물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교육의 본질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자,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런 책임을 맡기 위해서는 교육을 알고, 교육을 믿고, 교육을 살아낸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인선은 그러한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이번 인사는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을 단지 행정과 예산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통치 구조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외부자의 시선으로라도 혁신을 시도하겠다는 신호였다면, 변화의 여지를 기대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황은, 교육에 손댈 생각조차 없이 현 상태로 넘기려는 무관심과 방기의 태도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는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라, 교육의 미래를 포기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결국 교육부 장관직은 또다시 ‘안배의 산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인가. 여성 장관 비율을 맞추고, 충청권 출신을 배려하며, 비서울대 출신이라는 형식적 다양성을 채우기 위한 자리가 되어버린 지금, 이 자리는 정말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것인가. 교육의 방향을 설계하고, 다음 세대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중책이 단지 인사정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몫으로만 소모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교육부 장관이 그저 나눠줄 수 있는 자리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필자소개 수정
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책보좌관으로 일하다 조희연 교육감의 직 상실 이후 국회에 새 둥지를 틀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최민희 의원실 선임비서관으로 일했다.(edu.tech.khs@gmail.com)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