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0:23 오후 141호(2025.08)

[오정삼의 人in人]
살면 살아져

오정삼 농경제 79

긴 휴가를 얻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그동안 일하던 삼양동청소년아지트 센터장 자리를 퇴임했다. 내 나이 이제 우리 나이로 65세.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참 오래도 버틴 거지만 자신이 가진 생산성과 열정을 생각해 보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더 일할 수 있는데….

다행히도 실업급여와 얼마 안 되는 연금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연금생활자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마음은 하릴없이 청춘인데 새로운 일자리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가까운 주위 사람들은 실업급여 받을 때까지 푹 쉬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0여 년간 잠시 잠깐 쉰 적이 없긴 하니까.

그런데 천성이 어찌하랴. 그냥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영 편하지 않을 듯하여 퇴임 다음 날부터 바로 새로운 생활계획표(?)를 짰다. “하루가 길어지려면 일찍 일어나야지.”라며 30년을 지속해 온 주 3일 새벽 수영에 주 3일 새벽 조깅을 추가했다. 동주민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화강좌도 신청하고, 여유 시간 동안 도서관도 다니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점점 빨라지는 하루 일정에 어느새 새벽 4시가 되면 조깅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어둑한 새벽녘 서서히 대기를 불그스레 물들이는 일출을 등지고 뛰다 보면 이마와 콧등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이 가뿐 숨소리를 넘어선다.

시간이 여유가 생기니 얼마 전부터 딸내미가 엄마빠 꼭 보라던 『폭싹 속았수다』도 16화를 다 몰아서 봤다. 왜 딸내미가 눈물 찍, 콧물 찍 흘리며 드라마를 봤는지, 왜 엄마빠 꼭 보라 했는지 알 듯했다. 광례의 밉상스러운 억척스러움이, 애순이의 당돌할 정도의 당당함이, 그리고 금명이의 툭툭 내뱉는 애순에 대한 속없는 모진 말들이 다 우리들 이야기였다.

부모는 미안함에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함에 사무친다.1

부모로서 아무리 자식들에게 모든 걸 내어줄 것 같이 물심양면의 노력을 다해도 부모는 자식에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여전히 미안함을 가진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게 애를 써도 부모의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자식들의 가슴에는 서운함으로 꽂힌다.

관식이는 또 왜 그리도 애순에 대해 한결같은 순정남일까….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靑馬 유치환을 환생시킨다.

오늘 7월 10일 드디어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이 지난 3월 8일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에 의해서 석방된지 124일 만에 재구속됐다. 지난 겨울 12·3 계엄 선포 이후 조마조마하던 나의 새가슴이 이제야 한시름을 놓게 된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석렬이가 0.73% 표 차이로 가까스로 대통령에 당선에 된 이후에 어지간히 미덥지 못했나 보다. 『선구자』 의 필자로서 128호부터 139호까지 기고를 하는 동안 무려 여덟 번이나 하루하루 권력에 심취해 가는 어리석은 동창 녀석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안타까운 마음을 남겼었다. 그리고 마침내 139호에서는 한겨울 내내 쉬지 않고 탄핵을 외치는 보통 시민들의 바람대로 ‘너 이제 감옥 가야지!’라고 모진 말을 내뱉었는데, 오늘 141호에 이르러 드디어 녀석이 감옥에 들어갔다. 미루어 짐작컨대 오늘이 마지막으로 못난 석렬이 녀석에 대한 얘기를 쓰는 날이 될 것이다.

“요즘은 감옥이 호텔 됐다지.”라는 사뭇 꼰대 같은 말을 남길 필요도 없이 그가 지낼 6.6㎡나 되는 제법 럭셔리(?)한 독방에 그나마 에어컨 시설이 안돼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숩은지.

대학시절 데모를 주동하고 교도소 독방에 갇혀 지낼 때, 한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나마 독방이라서 여름은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반대로 겨울은 왜 그리 혹독했던지. 한겨울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탐방기2의 물은 얼어있었고, 그나마 파란색 수의 대신 집에서 넣어준 솜바지저고리의 바지춤에 손을 넣고 있는데도, 어느새 손가락이 얼어서 동상에 걸렸던 것이 기억난다. 요즘은 바닥에 난방은 된다고 하니 겨울은 지낼만할 것 같다. 그러나 당시에 뭐니 뭐니 해도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어떤 필기도구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관물(官物) 말고는 담요, 솜옷, 책을 제외하고 어떠한 사제(私製) 영치품도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알루미늄으로 된 치약 튜브로 희미하게 글을 써가며 나의 소식을, 반납하는 책을 통해서 교도소 바깥으로 내보내려다 적발되어 햇빛도 잘 안 들어오는 먹방(징벌방)에서 3개월을 지내야만 했다. 그해 유난히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징벌이 풀려서 일반 사방의 독방으로 전방을 하던 날, 아직은 입춘의 절기가 봄기운을 시샘하던 날,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이미 출소한 듯한 느낌에 마냥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계몽령, 법기술 등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온갖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비겁한 변명을 야불거리던 석렬이 때문에 이제 나에게 있어 “법과 원칙에 따라”라는 말은 더 이상 정의를 대변하는 말이 아니게 돼버렸다.

다행히도 우리 국민 모두를 계몽령의 깊이 패인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가증스러운 법기술의 농락에 치를 떨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감옥에 들어갔다. 이제야 비로소 죄수복을 입고, 수인번호 3617번을 달고, 무더운 한여름의 열기를 선풍기 바람에 식히며 담장 밖에서 이따금씩 희미하게 들려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미친 외침을 위안 삼고 있으리라.

그러나 어쩌리! 너에게 도파민을 솟게 만드는 그 외침도 점점 사라질 것이니, 친구이자 감옥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너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깊이 사죄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기 바란다.

살면 살아지니까.

  1. 필자 주 : 이번 기고 글에 나오는 변형 글꼴들은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대사들임을 알려드립니다.
  2. 탐방기는 교도소에서 사용하는 재래식 목욕탕에서 사용했던 작은 플라스틱 물바가지를 말한다. 탐방거리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오정삼 프로필 변경>

오정삼_ 젊은 시절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40년 가까이 서울시 강북구 주민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서울시 혁신교육지구 사업과 함께 ‘더불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여는 청소년’의 비전을 바탕으로 삼양동청소년아지트 센터장을 역임하다 퇴임하였다.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