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준 OBS ‘오늘의 기후’ PD, 농화학 88
물은 100℃에서 끓는다. 그런데 100℃에 도달하기 전까지 물은 지루하다 싶을 만큼 아무 미동도 하지 않는다. 끓는게 맞나 싶을 만큼 지루한 가열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한 방울 한 방울씩 기포가 올라오더니 금세 폭발적으로 끓기 시작한다. 질적변화의 시기, 이를 과학적으로는 ‘임계점’이라고 한다. 2004년 12월경 황우석 실험실은 자신들이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전 실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 좋은 배반포(줄기세포 전단계 배아)가 매우 높은 효율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NT-1(1번 줄기세포)을 만든 이전 실험에서 그들은 256개의 난자를 핵이식해 27개의 복제 배반포를 만들고 그중 1개가 줄기세포로 수립됐다. 배반포 성공률만 따지면 10.54%, 10개의 난자를 써서 그중 1개의 복제배반포를 만든 셈이다. 물론 이 정도 성공률도 당시로서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훗날 황우석 연구팀의 기술지도를 받아 복제 배반포를 수립한 영국 뉴캐슬 대학의 스토이코비치 박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10%가 넘는 복제배반포 성공에 이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당시 실험에서 황우석 팀은 자신들의 이전 성과들을 모든 면에서 확실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2004년 9월 24일에 수립된 10세 소년의 복제배반포 세포는 단 4개의 여성 난자를 핵이식해 1개의 배반포를 만들었다. 25%의 배반포 성공률이었다. 이후 11월 말에는 14개의 난자를 핵이식해 2개의 배반포를 수립했다. 배반포 성공률 14.3%. 그리고 12월 5일경에는 한꺼번에 7개의 복제배반포가 만들어졌다. 28개 난자를 핵이식해 7개의 배반포가 나왔으니 배반포 성공률은 25%. 여기서 4개의 줄기세포가 만들어졌으니 결과적으로 7개의 여성 난자를 사용해 1개의 줄기세포를 수립한 셈이다. 특히 이날 수립된 배반포들의 상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이는 줄기세포 배양과정에서 섞어심기 조작을 한 S조차 법정에서 인정한 사실이다.
“(2005년 논문 실험의 배반포 상태는) 2004년에 비해 확실히 좋았습니다.” (S의 법정증언, 2007.8.28)
전문가 의견도 같았다. 검찰청에 출석한 줄기세포 전문가들은 당시 황우석팀이 수립했던 복제 배반포들의 세포사진을 살펴본 뒤 ‘배반포 상태만 보면 2004년 것보다 좋다’고 진술했다. 훗날 법정에서 황우석 박사 측 증인으로 출석한 충북대 현상환 교수는 의학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D. Gardner 교수의 ‘인간 배반포 평가 시스템’에 준해 당시 배반포 상태를 평가한 자료를 공개했다.
“상위 등급(5AA) 양질의 배반포를 포함해 다수의 양호등급(3AA) 이상을 수립했습니다. 미국 하버드 연구팀이 양호등급(3AA) 이하에서도 줄기세포를 수립했다는 보고를 볼 때 충분히 줄기세포를 수립해 낼 만한 수준이었다고 봅니다.” (현상환 교수, 2009.1.12)
나는 이 대목에서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황우석 연구팀은 이전보다 상태가 좋은 복제배반포 71개를 만들어 배양책임자 S에게 건넸다. 그런데 남아있는 건 모두 가짜뿐이다. 섞어심기, 섞어심기, 섞어심기, 하나같이 배양과정에 상태가 안 좋아져서 가짜를 섞어심었다는 진술뿐이다. 자신도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정말 그랬을까? 그 71개 중 하나라도 온전히 줄기세포로 수립된 것은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 줄기세포를 키우는 배양접시는 웰이라고 불리는 4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다. 1번웰, 2번웰, 3번웰, 4번웰, 여기서 웰은 우물(웰, Well)처럼 푹 들어간 구획이다. S는 혹시라도 진짜를 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4개의 구획 중 한 구획에만 가짜 줄기세포를 섞어심었고 나머지에는 진짜 세포가 살고 있었지만 세포들이 약해서 모두 죽었다는 식으로 진술했다. 진짜 세포들이 허약해서 살릴 수 없었다는 방어논리, 그런데 그런 S의 논리가 크게 흔들려 요동친 순간이 있다. 2007년 8월 28일의 417호 대법정, S를 향해 황우석 박사 측 이봉구 변호사가 심문을 시작했다.
변호인 : 증인은 줄기세포의 유출을 막기 위한 국가정보원의 24시간 감시체계가 가동되고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줄기세포들을 마음대로 반출한 뒤 이를 소멸시켰죠?
S : 예.
마음대로 ‘반출’한 뒤 이를 ‘소멸’시켰다고?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납득할 수 없었다. S의 말대로 진짜는 다 죽고 가짜만 남은 상태라면, 그렇게 가짜로 조작된 줄기세포를 왜 S는 국정원 감시를 뚫고 외부로 밀반출했을까, 그렇게 밖으로 빼돌린 세포를 소멸시켰다고? 왜?
“내가 배양하는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줄기세포 모두 끝장나게 좋다.”
당시 황우석 팀에서 줄기세포 관리를 담당하던 권대기 팀장의 실험일지 한 대목이다. 끝장나게 좋다니…. 줄기세포들이 너무 무럭무럭 잘 자라서 그중 일부는 버리고 키울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별거 아니라고 여겼다. 어차피 S가 가짜로 다 조작했으니, 가짜 줄기세포니까 무럭무럭 잘 자랐지 뭐 특별한 게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다음 기록을 보고는 조금씩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 2004년 12월 28일, S는 특히 상태가 좋던 4번, 5번, 6번, 7번 줄기세포를 반출입 대장에 기록하지 않은 채 외부로 반출해 나감.
왜지? 본인이 조작한 가짜세포를 왜 몰래 들고나간 거지? 혹시 거기 뭐가 있었나? S가 들고나간 줄기세포의 이력을 찾아봤다. 그랬더니 이런 세포들이었다.
– 4번과 5번 줄기세포는 당뇨를 앓고 있던 미국인 시민권자(일명 클라라)의 세포였음.
당뇨 치료에 쓰여질 미국인 시민권자의 줄기세포, 황 박사는 이 환자의 세포 역시 미국의 슬로언케터링 암 센터에 분양해 준 뒤 임상시험까지 추진할 계획이었다. 다시 말해 이 세포는 청소년 포함 3,700만 명이 당뇨를 앓고 있는 미국 의학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세포였다. 더구나 25%가 넘는 복제배반포 효율에 배반포 상태가 특히 좋았던, 한 날 한 시에 4개의 줄기세포로 수립된 그 세포들을 S는 몰래 들고나갔다. 어디로 가져간 걸까? 미즈메디 연구소로 가져갔다고 한다. 남아있나? 남아있지 않다. 미즈메디로 옮기던 중 자전거에 부딪쳐 용기가 뒤집히는 바람에 다 죽었다고 한다.
변호인 : 검찰수사기록에 따르면 증인은 줄기세포의 향방을 묻는 수사검찰의 질문에 대해, ‘미즈메디에 도착한 후 연구실로 이동하던 중 꼬마가 몰던 자전거와 부딪혀 줄기세포를 담은 이동형 인큐베이터가 전도되며 줄기세포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변했죠?
S : 예
방청석은 제대로 소란스러워졌다. 격분한 방청객도 있었다. 그중에는 양일석 당시 서울대 수의대 학장도 있다. 수의생리학자인 양 학장은 법정에서 S의 진술을 듣고는 세포실험을 하는 연구자라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며 내게 의문점을 말해줬다.
양 학장 : 피디님은 혹시 줄기세포를 옮기는 이동식 컨테이너 박스를 본 적 있나요?
나 : 없습니다.
양 학장 : 이렇게 생겼어요. 제가 한번 그려볼께요.
그는 내 앞에서 컨테이너 박스 그림을 쓱쓱 그렸다. 이건, 마치 아이스 박스처럼 컸다. 그 안에 온도 조절 장치가 들어가서 매우 무겁고 큰, 성인 두 사람이 양쪽에서 들거나 혹은 한 사람이 양손을 다 써서 힘들게 들어야 하는 그런 장치였다. 일부러 발로 차도 뒤집어질 수 없는 무거운 구조물인데 그걸 혼자 들고 가다 꼬마가 몰던 자전거에 부딪쳐서 다 엎어졌다고?
“아이스박스같은 크기에 그 안에는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항온시스템이 내장돼 있어서 어른 한 사람이 들기에는 무겁습니다. 넓적하고 무게가 제법 나가서 일부러 엎으려고 작정해도 엎어지지 않아요. 그걸 혼자서 들고 가다 자전거에 부딪쳐서 다 엎어졌다?”
양 학장은 저건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증인석에 앉은 S는 계속 정말이라고, 엎어져서 다 죽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변호인은 계속 파고들었지만 S는 자신의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변호인 : 다른 연구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미즈메디 주차장과 연구실 간의 거리가 멀어 먼저 연구실 앞에 차를 주차해 물건을 내린 뒤 연구실로 옮겨가는 것이지 증인(S)의 주장처럼 옥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물건을 들고 장거리를 이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증인(S)도 평소에는 이런 방식으로 세포를 옮겨왔죠?
S : 아닙니다. 그것은 세포의 양이 많을 경우나 중요한 세포일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S가 들고나간 세포들은 어디에 있나? 검찰 수사가 이뤄질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제기했던 의혹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렇게 발표했다. 시민들의 의혹이 제기된 반출 줄기세포의 향방을 위해 다수의 연구기관을 조사했지만 잔존하는 세포는 없었음. 이에 대해 이런 댓글이 달렸다.
‘없겠지, 국내에는. 황박사가 만일 죽었다면 나중에 미국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12월 28일 의문의 밀반출이 이뤄진 며칠 뒤 또 다른 사건이 실험실에서 터졌다. 대규모 오염사고가 발생해 서울대 실험실에서 ‘끝장나게’ 배양되고 있던 줄기세포들이 모두 죽어버린 거다. 줄기세포들이 곰팡이에 오염되고 있음을 최초로 발견한 날은 2005년 1월 6일, 그러니까 줄기세포 밀반출이 이뤄진 9일 뒤의 일이다. 그런데 배양책임자였던 S는 오염사실을 즉시 황 박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그가 황 박사에게 오염사실을 보고한 날은 1월 9일, 오염 발생 3일이 지나서야 보고를 했다. 이미 곰팡이균의 일종인 이스트가 퍼질 대로 퍼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보고가 이뤄졌다. 결국 4번, 5번, 6번, 7번 이 네 개의 줄기세포들이 죽어버렸다. 이거 혹시 고의 아닌가? 변호인은 S를 추궁했다.
변호인 : 오염사고는 곰팡이의 일종인 이스트로 인한 사고였죠?
S :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변호인 : 오염사고는 초기에 증인(S)이 발견 즉시 이를 황우석 피고인에게 보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충분히 회생시킬 수 있는 사고였죠?
S : 장담 못하겠습니다.
변호인 : 그러나 증인은 줄기세포를 살릴 수 있음에도 고의적으로 보고도 안 하고 조치도 취하지 않아 결국 모두 죽고 폐기되게 했죠?
S : 고의는 아닙니다.
고의로 죽인 건 아니라는 S에게 변호인은 당시 S가 동료 연구원에게 했던 미묘한 뉘앙스의 발언을 법정에서 꺼냈다. ‘이걸 살려야 돼? 말아야 돼?’라고 말했었다는 거다.
변호인 : 증인(S)은 이렇게 살릴 수 있는 줄기세포를 방치해 죽게 하면서도 미즈메디 연구소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줄기세포를 살리려면 살릴 수 있는데 이걸 살려야 돼? 말아야 돼?’라며 호기를 부렸죠?
S: 예.
변호인 : 더구나 증인은 오염사고 이전에 미즈메디에서 배양하던 NT-1에서 이스트 오염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있었음에도 이를 황우석에게 보고한 사실이 없죠?
S : 예
변호인 : 당시 미즈메디에서 배양하던 NT-1이 이스트에 오염됐을 때 미즈메디는 ‘펀지존’이라는 항진균제를 사용해 오염사고를 극복한 사실이 있죠?
S : 오염사고는 못 막았고 다시 동결시킨 세포를 해동하느라 3주 동안은 실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변호인 : 결국 NT-4, 5, 6, 7번 줄기세포는 일부는 증인이 냉동 보관시키기 전인 초기 상태에서 임의로 들고나가 소멸시켰고, 곧이어 서울대 실험실에서 배양되던 것들도 오염사고로 다 죽어서 결국 냉동보관 되기 전에 모두 죽어 버린 거죠?
S : 예
냉동보관조차 시키지 않았다는 말에 제대로 소름이 돋았다. 줄기세포를 냉동보관하지 않았다는 말은 마치 중요한 문서작업을 끝낸 뒤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말과 똑같다. 확률은 낮지만 정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어디선가 반입된 곰팡이균이 퍼져 오염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기에 중요한 세포를 만들면 반드시 냉동보관한다. 그러나 S는 끝장나게 좋다던 줄기세포들을 냉동보관시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외부로 들고나갔고, 이후 남아있던 원본 세포들은 모두 오염사고로 죽었다. 이건… 아무리 S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언젠가 나는 이 부분에 대해 황 박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S와 관련해서 제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고 쓴소리를 들었지만 저는 지금도 그 친구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젊은 친구가 너무나 성실했습니다. 저희 실험실이 늘 새벽부터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 친구가 제일 일찍 나와서 연구했어요. 어떨 때는 저보다 더 일찍 나와서 세포를 돌보던 그 성실함에 저는 홀딱 반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고 여린 마음이던 그 친구가 저희 실험실에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나중에 수사기록과 자료들을 확인해 보면서 어떨 때는 ‘이건 이 친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황우석 박사, 2015.9.19)
어쨌든 대규모 오염사고로 실험실은 쑥대밭이 됐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두 번째 논문을 계속 강행할 것인가, 아니면 중단하고 한 호흡 쉬어갈 것인가, 이제 황 박사에게 선택의 순간이 왔다. 그는 2005년 초 인도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서 섀튼 교수를 만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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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2023년 3월부터 OBS 라디오(FM99.9MHz)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를 연출하며 한국PD연합회가 선정한 2023년 5월 ‘이달의 PD상’과 제50회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별명 기후보좌관.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