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시인 천상병씨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했는데 저는 그동안 꽃보다 더 예쁜 우리 친구들하고 즐거운 놀이터에서 소풍을 잘 끝내고 오늘부로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억겁의 우주의 세월에 몇십년의 차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동시대에 만난 사람은 다 친구입니다. 저의 좋은 친구인, 여러분 그동안 정말 행복했고 고마웠습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할 것이냐 하면 발레를 배울 것입니다.
패션디자인 공부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배워서 무엇을 할 것이냐? 목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그 과정을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패션 디자이너, 발레리나
이것이 제 어렸을 때 꿈이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30년 넘게 했으니 됐고, 그 다음 꿈을 향해서 도전할 것입니다. 살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 인고하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독립하려면 일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일을 가질 바에야 신나고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아서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토록 하고 싶던 선생님이 되어서 정말 보람 있고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찾아보세요 그래서 여러분도 저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2년 2월이었다. 평택여고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한 것은.
제자들에게 큰소리를 쳤겠다, 어렸을 때부터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그 해 4월부터 시작한 것은 발레였다. 그런데 굳은 뼈가 말을 듣지 않아 한 동작 한 동작 따라하느라 애를 먹었다.
딸보다도 한창 어린, 몸매가 여릿여릿한 예쁜 여선생님은 생글생글 웃으며 열심히 가르쳐 주었지만 그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또 발레라는 게 동작이 사뿐사뿐해야 하는데 민망스럽게도 내 몸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쿵쿵 둔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휴! 힘들어, 이게 웬 생고생이야, 내 돈 갖다 바치면서”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발레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다보면 무지무지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아! 어려서부터 얼마나 하고 싶던 발레였던가!”
나는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감격해서 눈물부터 나게 된다.
교직생활 중에도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친 후 복도를 걷던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렇게도 간절히 되고 싶던 선생님이 되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해서였다.

살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시작한 것이 공부였다. 그리고 가난한, 야학 출신인 나를 구원해 준 것은 우리나라의 좋은 제도였다. 자신이 노력하는 대로 기회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이 우리나라였다.
수명이 무척이나 길어진 지금은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 퇴직 전의 삶은 전반생, 퇴직 후의 삶은 여생이 아니라 후반생으로.
교직생활 못지않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요즈음이다.
내 후반생의 간절한 꿈은 패션디자이너이다.
“옷차림은 전략이고, 패션은 도전이다.”
“옷을 입는 것도 일종의 예술행위이다”
“……. & 더 맵시” 이것이 내 옷집의 이름이다.
내 어릴 적, 1960년대의 수원시 서둔동 마을에는 못 먹어서 배만 불뚝 튀어나오고 얼굴색은 누리끼리한 아이들 천지였다. 머리끝서부터 발끝까지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아이들이 입고 있는 것은 삭아서 올이 세로로 갈갈이 나간 런닝셔츠였다.
같은 처지면서도 그들이 너무도 불쌍해 보였던 나는 이 다음에 꼭 선생님이 되어서 옷을 내 손으로 만들어 입힌 후 공부를 가르치고 싶었다. 그때는 왜 그리도 양말이 잘 헤지는지. 여덟 식구 헤진 양말을 깁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10살 아래인 막내동생 스커트를 만들어 준 것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낡아서 못 입게 된 우리 네 자매들의 골덴바지의 성한 부분만 오려서 손바느질로 만든 것이다. 이렇듯 어려서부터 바느질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세상에 널려 있는 게 옷이고, 이 시장은 한마디로 엄청난 레드 오션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시장에 뛰어 들고자 하는 것은 옷의 유통단계에 혁신을 불러오고 싶어서이다. 좋은 옷은 세 박자가 맞아야 한다. 질감, 색감, 디자인. 그런데 좋은 옷의 조건을 갖췄지만 거품이 너무 끼어 있는 백화점 옷의 가격에 거부감이 들곤 한다.
여성들에게 좋은 품질의 옷을 착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싶다. 내 강렬한 소망이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것이 발레라면 패션디자인은 일이다. 내 모든 열정을 바쳐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싶은 즐겁고 흥미진진한 일이다.
2012년 5월부터 강남에 있는 라사라 패션디자인학원에서 패션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또 얼마나 가슴 설레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2, 30대 젊은 사람들과 시작한 패션디자인공부도 만만치 않기는 발레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가 만들고 싶은 옷을 꼭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일러스트 드로잉을 하고 패턴을 하며 바느질을 했다. 중급까지 6개월 과정을 마친 후 2014년 4월 9일부터는 서울시 창업스쿨에서 패션창업과정을 수강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은 언제나 꿀맛이다.
옷차림은 그 사람이다. 그의 취향, 가치관 그리고 철학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여성들에게 옷은 아름다운 날개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확실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이왕에 입는 것. 보다 예쁘고 세련되게 입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입었을 때 편안하고, 아름답고 세련된 거기에다가 가격도 착한 옷을 만들 것이다. 내 옷의 컨셉인 레트로 로코코풍의 옷을. 오늘도 나는 옷의 색감과 질감 그리고 실루엣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코엘료는 그의 저서 ‘연금술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많은 행운을 거머쥐었던 것 같다
그토록 간절한 꿈인 선생님이 되었고 퇴직 후에는 다시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으니까.
두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열정을 다 바치고 있는 지금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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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aeraniris@naver.com)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