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영 수의 84
이 평전의 애당초 계획되었던 제목은 “제주 4.3과 진길부의 삶”이었다.
편집위원으로서 진길부 전조합장의 여러 가지 인생사를 정리하면서 유아기에 있었던 1948년도 사건이 중요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7년이나 지난 2025년에 이르러서도 제주도의 역사는 살아있는 자들에게 여전히 드러냄보다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음을 편집하면서도 느끼게 되었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작품 속에서 제주도 역사를 문학적으로 표현하였다.
“작별하지 않는다”. 책을 첫 번째 읽었을 때는 제주도 역사가 잘 이해되지 않아서 머리가 아팠었는데 제주도 4‧3과 관련하여 진길부의 삶과 결부시켜 보면서 두 번, 세 번 읽어 볼수록 제주도 역사가 그 책 내용에 들어 있었다.
당시 제주도 동쪽 마을을 소재로 한 작품 내용 속에서 희생된 가족에 대한 연민과 집착은 제주도 동부지역인 대정읍 신도리에서 살았던 진길부의 어린 시절이 연상되었다.
한강 작가의 유명한 화두 중에서
“죽은 자가 산자를 도울 수가 있는가?”
“산자가 죽은 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의미는 진길부로부터도 찾아볼 수 있다.
진길부는 부모의 죽음을 남북교류의 디딤돌로 승화시켜 간 분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진길부 조합장은 그 누구보다도 남북이 수십 년째 분단되어 있음을 안타까워하였고 그나마 진행되고 있었던 남북교류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점들을 고뇌하며 대안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던 분이다.
2007년 11월 평양을 같이 방문하였던 시기에 진길부 전 조합장께 우매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주 4‧3 사건 때 폭도들 때문에 부모가 다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퍼주기 논란이 있는 남북 양돈 교류에 헌신적이신가요?”
진길부 조합장은 빙그레 웃음 지으면서
“나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할려고 하는 일이야! 김원장도 북에 있는 이산가족 때문에 남북 교류 사업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념 때문에 사람을 서로 쏘아 죽이고 하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하네…!”
위의 진길부 조합장의 답변은 필자가 악착같이 이 평전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평화와 제주도를 진정 사랑했던 진길부 조합장.
이념보다는 돼지를 매개로 한 남북교류 사업에 충실하였던 분.
금강산 지역 성북리 양돈장에 사료 공급을 약속하고 그 약속대로 실천한 분.
금강산 지역에서 양돈장을 추가로 지원해 달라는 북측 요구에 선뜻 응하신 분.
북한지역에 냉장고가 없는 곳이 많으니 오래 유통될 수 있도록 돼지고기 통조림을 만들어서 북측에 보낸 분.
돼지뿐만 아니라 제주산 감귤을 북측으로 보내자고 하셨던 분.
격년으로 제주 감귤이 과잉생산 될 때만 북측으로 보내지 말고 매년 보내자 하던 분.
제주도가 남북 평화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하였던 분.
제주도에서 남북 또는 남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기대하였던 분.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도 4‧3 선언-평화공원 설립 등을 반겼던 분.
2009년 제주도 흑돼지 200두를 북한 평양에 보내는 사업에 아낌없이 성원해 주셨던 분.
필자가 아는 평화와 제주도를 사랑했던 진길부 님의 모습이다.
그러나 70여 년 전 제주도 역사는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알 수 없는 모두의 사건이기에 언급하기조차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고, 이념의 속박 속에서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제주도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간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2007년 개정된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이 사건의 명칭도 정리가 되었는데 “제주 4‧3 사건”이라 함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시 관덕정 인근에서 비롯된 발포 사건으로 시위 군중 6명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건을 두고 당시 제주 경찰은 관덕정 인근에서의 발포가 치안을 위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고, 이날 저녁부터 통행금지령을 선포하고, 통행금지령 위반자들을 대거 구속하게 되었고, 시위 대처 등으로 모자라는 제주 경찰을 보충하기 위하여 수백 명의 경찰 인력을 육지로부터 파견받게 되었다. 시위와 관련하여 주동자급으로 분류된 수십 명의 제주도민이 경찰에 체포, 구금되자 이에 항거하여 제주도민 상당수가 참여하는 농민, 노동자, 운송업체, 공무원, 학생 등의 민관합동 파업이 벌어졌다. 미군정 당국은 제주도 경찰이 일부 파업에 참가하는 등 제주지역 진압 경찰이 부족하여 그 자리를 임시 응원 경찰, 육지에서 불러온 서북청년단 회원들로 진압 경찰을 채웠다. 군인들도 제주도에 파견되었다.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 회원들로 구성된 제주 경찰들 중심으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한동안 이어졌고, 남로당을 중심으로 폭력 투쟁이 있었고 1954년까지 수만 명의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이 와중에 1948년 11월경 진길부의 부모는 진길부만 남겨둔 채로 제주도 역사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부모 없이 살았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남북의 이념 대결보다는 본인이 할 수 있었던 “양돈사업”을 북측에 소개하고 양돈사업의 핵심인 양돈용 사료를 끝까지 보장했던 진길부가 있어서 금강산 지역의 남북 농업교류사업은 신뢰를 쌓아갔고, 금강산 성북리 양돈장 1곳에서 시작하여 금천리 양돈장, 삼일포리 양돈장, 나중에 개성 봉동 양돈장으로 폭을 넓히게 되었고 2007년에는 평양 강남군 고읍리에 5,000두 규모의 남북 합작 양돈장 건립 논의까지 진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진길부가 추진한 남북양돈교류사업이 2007년 10월 4일 남북한 정상회담의 의제로도 올라 이견 없이 합의되는 유일한 사업이 되었다. 즉 양돈 농업교류가 남북한 정상들에게도 인정되는 등 남북 평화공존에도 기여하였다. 물론 이후 정세 변화 속에서 양돈장 건립까지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진길부가 중심이 되어 쌓아 놓은 남북 합작 양돈장, 남북 농업교류의 신뢰, 남북 평화 공존의 길은 후대에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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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_ 1984년 수의학과에 입학, 2학기 겨울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1986년 8월 수원지역자민투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중 수원교도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고 1987년 9월에 복적했다. 1990년 2월 졸업 후 자연농업중앙회, 육가공회사, 동물용의약품 회사, 사료회사를 거쳐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도드람양돈조합에서 일했다. 2004부터 현재 통일농수산 양돈사업팀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현재 산업동물, 반려동물병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yswine@hanmail.net)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