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최민희 의원실 선임비서관, 환경재료과학 08
12월 3일, 평화로운 일상이 산산조각 났다. 대통령실의 심야 브리핑 소식이 번개처럼 퍼졌다. 여당이 예산안 협상을 거부해 삭감된 예산안만이 본회의에 상정된 상황. 그저 그런 정치적 입장 발표겠거니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그 순간이, 마지막 평화로운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휴대폰이 울부짖듯 울렸다. 의원실 비서관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비서관님! 민주주의가 무너졌어요! 당장 여의도로 오셔야 해요!”
현실감이 없었다. 휴대폰 화면에 던져진 ‘계엄’ 두 글자가 눈을 파고들었다. 2024년에 이런 악몽 같은 단어를 보게 될 줄이야.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가운데 짐을 챙겼다.
택시 안에서 기사님은 자신의 계엄 경험담을 열변하셨지만,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흘러갔다.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게 진짜 계엄이라면, 우리는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지만, 국회의 계엄 해제 권한만이 우리의 희망이었다. 머리 위로는 군용 헬기들이 독수리처럼 맴돌았다.
여의도는 이미 전쟁터였다. 경찰들이 철조망처럼 늘어서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분노와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찬 눈빛으로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인간 사다리가 되어 우리가 담을 넘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국회의사당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총구를 들이댄 군인들이 마치 적진을 점령하듯 서 있었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이 끔찍한 현실.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내려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를 점령하려 했다. 어떤 영화감독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장면이었다. 보좌진들과 시민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군인들을 막아섰다. 소파로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맨몸으로 저항하는 사이 기적처럼 계엄해제 안이 의결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였고, 대통령은 발포 명령까지 내렸다고 한다.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서 춤추고 있었던 것이다.
한 달이 더 지났다. 매일 새로운 충격적 뉴스들이 쏟아지면서, 그날의 공포는 희미해져 간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군홧발로 민주주의를 짓밟으려 했던 그들의 만행을. 그들은 이제 “2시간 만에 끝난 무혈 계엄”이라며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조금만 덜 용감했더라면 어떤 참극이 벌어졌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계엄해제를 의결한 12월 4일을 헌법수호의 날로 지정하고, 군인들이 국회를 침략했던 그 순간들을 영원히 기록해야 한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이번에야말로 내란 세력을 뿌리째 뽑아, 다시는 이 땅에서 군홧발 소리가 민주주의를 짓밟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기억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
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다 조희연 교육감의 직 상실 이후 국회에 새 둥지를 틀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최민희 의원실 선임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scikhs527@gmail.com)
Last modified: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