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삼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 농경제 79
늘 같은 꿈을 꾸었어.
어둠 속엔 항상 귀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맨날 귀신에 쫓기었어.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이불 속에 웅크릴 뿐이었어.
밤이 무서웠어.
잠이 들기 전까지 계속 “오늘은 귀신 꿈 꾸지마라.”를 되뇌이며 그저 눈을 감고 이불 속에 숨어 있을 뿐이었어.
그래서 그런지 나는 매일 밤 귀신 꿈에 시달렸어.
사실 나는 알고 있었어. 나의 이 괴로움 때문에 더욱 귀신들이 밤마다 나를 찾아온다는 것을,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그동안 너무 책을 멀리한 것 같은 자책감에 <노벨문학상 수상작 한강작가 컬렉션>을 만들기로 하고 20여 권이 넘는 한강 작가 책을 구입했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흰』, 『희랍어교실』, 『몽고반점』을 읽었지만, 그녀의 작품을 읽는 내내 내용에 집중하느라 엄청 힘들 뿐이었다. 작가의 매우 독특하고 섬세한 문체, 비유와 상징, 그리고 작가 특유의 자신 내부의 깊은 감정에 침잠하는 태도, 심지어 같은 소설 내에서의 화자의 변경 등이 나에겐 무척 당황스러웠다.
마침내 작가의 책을 읽으며 겪는 ‘추체험’이 ‘차란차란’할 즈음에도 더욱 엄청난 압박감이 몰려올 뿐이었다. 솔직히 나의 이런 단어들의 사용이 작가 한강에게는 ‘무람없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독자 여러분은 여기까지의 나의 표현이 또다시 우리 시대 위대한 작가에 대한 오마주임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심지어 나는 한강의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소설을 보면서 모르는 단어들의 뜻을 찾아보기 위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펼쳐봐야만 했다.)

80년대 대학교 시절 서클 친구들인 ‘바로농연’의 후배들과 부부동반의 베트남 하롱베이-하노이 3박 5일 여행을 다녀왔다. 40여 년을 함께 알고 지내면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함께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생각의 방식도, 사는 모습도 제각기 달라졌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공감과 배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수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6명의 인원이 다들 취향과 선호도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행 내내 우리는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세월에 녹아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오래된 친구만이 가질 수 있는 정서적 지지, 공통의 추억, 안정감과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나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정서적 지원, 공통의 추억에서 나오는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소재에서 비롯된 강한 유대감,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가면서 채워진 각자의 성격, 가치관, 장단점 등에 대한 이해가 서로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었다. 이로부터 나오는 안정감과 편안함은 서로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다 함께 좋은 경험을 나누며 다음번의 기회를 약속했다.
윤석열의 57년 지기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윤석열을 가리켜 “극우세력의 수괴”, “정신적으로 화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오래된 친구는 내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볼 수 있으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도 있고, 그들의 조언과 피드백은 나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나의 삶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나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나의 새로운 관심사나 취미를 지지하고, 함께 새로운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오래된 친구는 삶의 다양한 단계에서 나를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이 오래된 관계를 손절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는 경우가 있다. ‘손절’이라는 말은 원래 주식 시장에서 쓰이는 손해를 감수하고 매도하는 손절매(損切賣)를 줄여서 쓰는 일상의 줄임 용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에서 ‘관계를 끊는 행위’로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개인의 선택일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손절하거나 손절당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관계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관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어긋날 때 금세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관계일 뿐이다. 과연 이들이 나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는 조언과 지지를 해줄 수 있겠는가.
지금 윤석열의 처지가 그렇다. 오랜 지기들이 손절을 선언하고,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나만 하더라도 그가 현재 보여주는 ‘술에 취하고, 권력에 취해 미쳐 날뛰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오래된 친구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새로운 낯선 관계인 극우 유튜버나, 대통령으로서 권력의 힘이 미치는 극우 아첨꾼들에 둘러싸인 채 자신만의 외로운 성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도 경험해 볼 수 없는 계엄령 선포까지 하고 말았다. 여전히 언젠가는 ‘권토중래’(?)할 날이 올 것을 확신하며.
이쯤 되면 이젠 우리 국민들이 미쳐버릴 판이다.
그래, 이제 와서 석열이 니가 경험 안 해본 게 뭐가 있겠니?
아니 있네 감옥!!!
그래도 한 줌 남은 측은지심으로 바라건대, 감옥에 가더라도 부디 차디찬 철창에 매달려서 몸부림치지 말고, 차분히 앉아서 한강 작가의 책 좀 읽길 바란다.
아마 너는 어려워서 못 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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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여 년 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현재는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으로 ‘더불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여는 청소년’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체, 참여, 성장,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baroaca@gmail.com)
Last modified: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