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양 사단법인 농업조사전문가협회장, 농학 86
지난해 12.3에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있었던 일부터 거꾸로 지금 지내고 있는 겨울과 지난 가을에 있었던 저의 이야기입니다.
1. 장흥 동학농민혁명무명농민군 묘역에 성묘를 다녀왔습니다.
장흥 석대들 전적지는 동학농민혁명 4대 전적지 중의 하나입니다. 정읍 황토현 전적지, 공주 우금치 전적지, 장성 황룡 전적지, 장흥 석대들 전적지가 동학농민혁명 4대 전적지입니다.


이 석대들 전투에서 전사하신 분들이 현재의 장흥공설운동장 주변에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장흥공설운동장 공사를 하면서 장흥공설묘지로 이전하여 제4묘역에 안장이 되었습니다. 무연고묘인지라 남루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2025년 1월 3일에 순천에 거주하는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김명재 사무국장이 장흥묘역에 성묘를 간다는 글을 보고 동참한다고 했습니다. 아내도 함께 한다고 해서 같이 다녀왔습니다.
특별한 의미는 모르겠으나 막걸리 열병, 생수 열병, 떡국 열 그릇을 놓고 광주에서, 순천에서, 장흥에서 총 12명이 오셔서 함께 성묘를 드렸습니다.
또 다른 묘역인 장흥군 관산읍 남송리 묘역에도 다녀왔습니다. 소에게 먹이는 공룡알이 가로막아서 있어서, 지나가면서 알아보기는 불가능하였습니다. 아는 사람만이 간신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안내판도 간신히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학생들이 만들었다는 안내판은 바로 보고 찍지 못하고 팔만 뻗어서 간신히 찍었습니다.

지난해에 여러 곳을 다니며 깜냥에 공부를 한다고 하였으나, 이날 이곳에 와서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씨 아버지의 고향 정도로만 알고, 다만 저의 태생지 정도로만 알았던 장흥이 동학의 최후 최대 격전지, 참혹한 학살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았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올해에는 시간이 나는 대로 더 자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득량만 조류 탐사에 합류하다.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 3일에 고흥농민회 카톡방에 고흥만 간척지에서 겨울 철새 탐조 안내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평소에 몇몇 분들께서 탐조여행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전에 한번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많지 않았던 토요일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아내와 함께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고흥드론특화지식산업센터 주차장에서 6명이 모여서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고흥만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좌우지간에 큰기러기, 쇠기러기, 독수리, 말똥가리, 저어새 등을 신기하게 관찰하였습니다.


자리를 옮겨서 도덕면 오마간척지의 백옥저수지 아래의 저류지에서 새를 보았습니다. 이곳은 이청준작가님의 ‘당신들의 천국’의 주요 무대였던 오마간척지 안쪽입니다. 역사의 애환을 생각하면서 철새들을 보니 왠지 더 쓸쓸해 보였습니다. 어느 순간 외롭게 보이던 철새들도 떠나고 없어 퀭해진 저류지를 뒤로 하고 식사를 하러 출발하였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중에 멍이섬 방조제에서 송재겸 탐조 대장님께서 차를 세우셔서 다시 새를 관찰하였습니다. 아마도 좀 전에 보았던 새들도 날아와 있는 듯이 많은 새들이 있었습니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새를 보다가 식당에 예약을 한 생각이 들어서 부랴부랴 식당으로 갔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제가 엔빵을 제안하여서 1인당 1만 원의 식사비를 갹출하였습니다. 그래야 다음에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제가 안내해주신 분 것은 부담을 하였습니다. 고마운 것은 표현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진 후에 당일 행사를 추진하셨던 분께서 “득량만사랑”이라는 톡방으로 초대해 주셔서 이후로는 항상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3. 무밥 전도사
2024년 11월에는 고흥으로 세달살이를 오신 분들과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여주에서 오신 부부, 서울 노원구와 서울 마포구에서 오신 젊은 여성 두 분 등 총 4분과 참 재미있는 두 달을 보냈습니다. 계획은 9, 10, 11월로 세 달 살이였는데, 9월 말에야 참여자가 확정되어서 두 달 정도였습니다. 늦게 참여하신 분은 10월 20일 이후에 함께 해서 채 한 달 반도 되지 않지만 영겁을 함께 한 듯 끈끈한 라포가 형성되었습니다.
초저녁에 수성을 보러 다니고, 새벽 4시에 카노푸스(=노인성)를 보러 다녔습니다. 흐린 날은 각자 생활하다가도 별 보기 좋은 밤이면 느닷없이 만나서 고흥의 밤하늘을 만끽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11월 말쯤에 고흥의 생활을 정리할 때쯤에 같은 숙소에서 생활한 두분이 저와 아내를 그 숙소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동안 냉장고에 쌓여 있던 식재료를 털어 먹어야 한다고 해서 저희를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입이 방정을 떨어서, 제가 무밥을 할 줄 안다고 까불어 버려서 그날 무밥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원래는 굴까지 얹어서 무굴밥을 하기로 하였으나, 재료를 준비하시기로 한 분이 깜빡 잊고 오징어회만 준비하고 굴을 준비하지 않아 그냥 무밥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쉽지만 그날 대만족을 하시고 떠나셨는데, 그분들 중 한 분이 남편과 함께 2025년 1월 4일에 고흥에 갑자기 별 보러 내려왔습니다.
그때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다시 제 입이 방정을 떨어서 다시 무밥 얘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재료를 직접 준비하였습니다. 쪽파, 달래, 무를 구입하고, 굴을 구입하다가 옆에 보이는 꼬막도 구입하고 말았습니다. 아이고메, 일이 곱절은 힘들어지는 일을 벌이고야 말았습니다.
대나무로 죽공예를 하시는 분 댁에 모여서 부랴부랴 준비해 놓은 쌀에 무를 얹고, 굴을 씻어 얹고 밥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히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이면서 바쁘게 꼬막을 씻었습니다. 잽싸게 꼬막이 입을 벌리지 않게 요령껏 삶고, 구경만 하던 아내의 도움을 받아 꼬막을 깠습니다. ‘꼬막 만원 어치가 왜 이렇게 많은지’ 원망하면서 까서, 다시 꼬막을 삶았던 물에 세 번이나 씻어서 뻘과 작은 껍질을 대부분 제거하고 받쳐 두었습니다.
집주인이 손님들이 온다고 쌀을 너무 많이 넣어서 밥이 조금 설은 느낌은 있었지만, 큰 냄비에 붓고, 다른 분들께서 준비한 쪽파+달래장을 더하고, 삶아서 건져둔 꼬막을 넣고 비볐습니다. 큰 세숫대야 같은 양푼에 있던 밥이 순식간에 동이 날 정도로 맛있게 드셨습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여섯명이 모이면 누군가는 사진을 남기는 데, 무밥을 할 때에는 두 번 모두 증거 사진이 없습니다. 제가 워낙 정신없이 하는 이유도 있지만, 제가 비비는 퍼포먼스에 압도되어 모두들 사진 찍는 것을 잊는 듯합니다. 다음에는 아내에게 꼭 정신 차리고 사진을 찍으라고 해야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언덕 위에 지어진 그 집 마당에서 빠른 바람에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아름다운 별을 보다가, 고흥에서는 보기 어려운 휘날리는 눈을 보면서 귀가하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무밥을 해주고 채반과 과일 포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4. 12.3 후의 활동
갑작스러운 계엄. 우선 그날 곧바로 의사당으로 달려가셔서 나라를 구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12월 7일 토요일에 고흥에서도 버스를 준비하여 서울로 가기로 하였는데, ‘꿈꾸는 예술터’라는 곳에서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에게 별에 관한 강의가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음에는 꼭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 고흥의 가장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파리바게뜨 사거리에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첫날은 또 일이 있어서 못 갔다가 다을날부터 함께 했습니다. 민원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음날부터는 고흥청소년문화의집 사거리에서 모였습니다. 13일 금요일과 14일 토요일에는 고흥군청 앞 광장에서 아내와 함께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서울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19일 목요일에는 김선동 전 국회의원의 동생 김선호라는 동생과 공주 우금치로 트랙터 행진을 응원하러 다녀왔습니다. 김선호라는 동생은 고흥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남태령으로 올라가서 저지선을 뚫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었습니다. 미안하고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할 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제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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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양_ 두 차례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지난해 와포햇살영농조합법인에서 연구부장으로 근무하였고 중 학교 텃밭교육 및 귀농인과 청년농업인 컨설팅을 했다. 종자기술사, 농화학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자격증과 천문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농업조사전문가협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ljycby@daum.net)
Last modified: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