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비서관 일기]
교권보호국보다 먼저, 민원의 입구를 고쳐야 한다

김현수 환경재료과학 08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수학여행이 취소되고 운동회가 축소되며 생활지도를 꺼리는 교사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흔히 이를 교권 침해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 더 넓게 보면 이 현상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민원사회’의 산물이다.

 

공직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악성민원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수백 통의 문자를 보내고, 좌표를 찍고, 반복적으로 민원을 넣는 등 국민신문고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민원 창구가 활성화되면서 민원은 더욱 쉽고 빠르게 제기되지만, 그 과정에서 행정이 감당해야 할 부담 역시 폭증하고 있다.

 

학교는 이러한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과거에는 학교를 찾아가 교사를 만나기 위해 시간과 절차, 일정 수준의 사회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학부모 역시 학교 방문 자체를 하나의 공식적인 행위로 인식했다. 지금은 다르다.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 온라인 신고 한 번이면 담임교사 개인에게 즉시 압력이 전달된다. 민원의 문턱이 낮아진 만큼 민원이 지녀야 할 무게감도 함께 사라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최근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이 제안한 교육활동보호국 신설 논의가 등장했다. 교육활동보호국 구상은 교사가 민원, 아동학대 신고, 소송 대응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교육청이 책임지는 통합 지원체계를 만들자는 취지다. 법률 지원과 생활지도 지원, 악성 민원 대응, 긴급 지원 기능을 한 조직에서 총괄하겠다는 구상으로, 교사 개인이 떠안던 부담을 기관이 분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찬성 논리는 분명하다. 지금처럼 교사 개인이 민원과 소송, 아동학대 신고를 홀로 감당하는 구조로는 누구도 교단에 남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생활지도와 상담, 학생 지도가 곧 민원과 신고,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교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지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기관 책임형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교육활동보호국은 사건이 발생한 뒤 대응을 지원하는 조직일 뿐, 갈등이 발생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학교 구성원 간 대화와 조정보다 신고와 법적 대응이 우선되는 문화가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은 정작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을 비켜가고 있다.

 

왜 우리는 민원과 신고가 교사 개인에게 이토록 쉽고 빠르게 도달하는 구조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가.

 

교육활동보호국이든 교권보호과든 결국 모든 논의는 민원과 신고가 교사 개인에게 직접 전달되는 현재의 구조를 전제로 한다. 그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대응 조직만 확대하는 것은 대증요법에 가깝다. 입구는 그대로 두고 출구만 넓히는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원은 지나치게 쉽다. 대면 절차도, 숙의 과정도 없이 클릭 몇 번이면 기관과 담당자 개인에게 직접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민원 제기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권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숙의와 책임, 그리고 절차를 필요로 한다.

 

오늘날 문제는 민원의 권리가 아니라 민원의 비용이다. 과거에는 민원을 제기하려면 시간을 내야 했고, 직접 방문해야 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그 과정 자체가 민원에 일정한 무게를 부여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민원을 넣을 수 있고, 담당자는 실시간으로 응답 압박을 받는다. 시민에게서 사라진 비용은 고스란히 공무원과 교사의 부담으로 이전됐다.

 

그래서 순서가 바뀌었다고 본다. 교사를 보호할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일보다 먼저, 민원이 개인에게 즉시 도달하는 통로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민원을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원이 개인을 직접 겨누는 구조에서 기관이 먼저 접수하고 조정하며 숙의하는 구조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극단적인 사고실험도 가능하다. 모든 국민에게 매년 일정 수량의 ‘민원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기본적인 민원권은 보장받되, 추가적인 민원을 제기하려면 자신의 바우처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의 미사용 바우처를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민원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면서 의무는 0에 가깝게 덜어주지 않았는가 돌아봐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민원 절차에 물리적 문턱을 복원하는 것이다. 최소한 학교 민원만큼은 온라인 메시지나 메신저를 통한 직접 접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공식 서면 접수와 예약된 대면 상담을 기본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과거의 방식이 더 우월해서가 아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숙고의 과정이 있을 때 사람들은 순간적인 감정과 공적인 문제를 구분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제안들은 적지 않은 반론을 불러올 것이다. 민원권을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도의 구체적 형태가 아니라 문제의식이다. 지금의 민원 체계는 시민의 권리를 확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권리가 행사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책임과 비용은 거의 제거해 버렸다. 권리만 있고 부담은 없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그 비용은 결국 공무원과 교사,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형태로 사회 전체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물론 교육활동보호국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발생한 아동학대 신고와 소송, 악성 민원에 대해 교사를 혼자 두지 않을 기관 책임 체계는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조직이 감당해야 할 업무량 자체를 줄이는 일, 즉 민원과 신고가 발생하는 입구를 정비하는 일을 건너뛴 채 출구만 넓힌다면 교육활동보호국 역시 또 하나의 거대한 행정조직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학교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응징하거나 방어하는 조직을 하나 더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개인에게 화살이 날아가지 않도록 제도의 통로를 다시 설계하는 데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권보호국보다 먼저, 민원의 입구를 고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민원이 다시금 일정한 책임과 비용을 갖도록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다 조희연 교육감의 직 상실 이후 국회에 새 둥지를 틀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최민희 의원실 선임비서관으로 일했다.(edu.tech.kh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