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0:49 오후 144호(2026.04)

[국박사의 책읽기]
봉인 해제된 야만의 광풍 앞에서 다시 사람을 생각한다.-『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문학과지성사』를 읽고

국승용 농화학과 87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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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인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당시 세계 산업과 정치를 주도하던 유럽은 초토화되었다. 자본주의의 확산과 시민사회의 성장에 의해 왕정은 공화정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지만, 영토를 확장해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제국주의적 성향은 약화되지 않았다. 정말로 가치를 공유했던 것인지,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셈법이 작용했던 것인지를 밝히는 것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지 않기 위해, 또는 이기기 위해 국가 간 동맹이 확산되었고, 국지적인 전투가 유럽 전역의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했다. 산업화가 뒷받침된 강력한 살상력의 무기가 보급되면서 과거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군인이 사망했고, 전쟁 지역 국가의 상당한 지역이 파괴되었다. 승전국들은 패전국의 영토와 식민지를 나누어 가졌다. 끝까지 저항했던 독일에 대해서는 전쟁 보상금을 부과하였는데, 그 수준은 독일의 재건을 불가능하게 하기에는 부족했고, 경제를 부흥시켜 보상금을 상환하기에는 가혹했던 ‘어정쩡’한 정도였다고 들 한다. 20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무기의 살상력은 비교할 수 없이 커졌고, 군과 민간의 피해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전 세계가 전쟁의 포화에 휩쓸렸고, 특히 유럽은 사람, 사회, 사회 인프라 그 무엇할 것 없이 황폐해졌다.

토마스 홉즈는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이야기하며, 만인이 가지고 있는 폭력을 국가에 양도하면서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는 국가론을 전개했다. 어쩌면 유엔(United Nations 국제연합)은 리바이어던의 세계 버전이었을 수 있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체계는 군축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세계적인 군사 강국(2차 세계 대전 주요 승전국)에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지전이 세계대전으로 확산하는 것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임이사국이 일으키는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면에서 유엔의 평화 체제는 출발부터 불안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다.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공격했고, 그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나토도 미국도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4년이 지나 미국은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했다. 세계 최강 군사력의 국가가 자기보다 훨씬 약한 군사력을 가진 작은 나라를 합당한 이유 없이 공격하는데,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참 희한하게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데, 미국의 전쟁이 기존의 불안한 질서의 해체를 촉발하는 발화점 같다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힘센 자가 약자를 폭력(군사력)으로 짓누르는 야만의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일까? 그렇다고 답하기는 조금 성급한 듯 하지만, 세계열강이 평화를 유지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더 이상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인지는 간단히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이기적인 면이 많지만, 모성이나 집단에 대한 자기희생과 같이 이기적이지 않은 본성이 발현되는 사례도 넘쳐난다.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일정한 조건에서 사람은 서로를 도와 사회를 이루어 공존할 수 있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그 조건에 대한 것이다.

김현경은 먼저, 인간(human)과 사람(person 또는 people)을 구분한다. 인간은 호모사피엔스라고 이해하면 되고, 사람은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된다. 늑대인간이 있다면 그는 인간이되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인간인데 사람이 아닌 경우를 늑대인간과 같이 특수한 경우가 아닌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례를 나열한다. 신생아는 사람으로 인식되지만 태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과거의 노예들은 인간이었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사형수는 인간이지만 그를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적지 않다. 군인은 사람이지만 전투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면 인간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여기서 사람과 장소에 대한 관계가 드러난다. 실종자는 자신이 속했던 공간에서 사라진 사람이다. 실종자가 복귀하기 전에 그는 그에게 부여된 사회적 권리는 제한된다. 고대 서양 사회의 노예는 전쟁 포로 등 자신이 살던 공간을 떠나 주인의 사회에서 사람에게 부여된 일체의 권리를 잃고 살게 되는데, 그가 떠나온 사회는 그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고향을 떠난 난민들도 사람으로서 온전한 권리를 부여받지는 못한다. 장소가 비단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지위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거나 대우받기 위해서는 그에게 장소를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장소를 보장받는 권리를 성원권(membership)이라 한다.

책에서 드러내놓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원권이라는 ‘권리’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곱씹어 볼 만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사람이라면 인종, 성별, 빈부, 신체적 능력 등에 상관없이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합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존엄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모호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딘지 불분명한 외부로부터 주어진 존엄성이 아니라 사회에서 부여받은 성원권이라는 권리는 좀 더 명쾌한 설명 같다. 내가 차별받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베풀어 주는 시혜가 아니라 내게 보장된 권리(성원권)라고 보는 것이 마음에 와닿는다.

성원권은 내가 주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에게 그냥 주는 것이다(물론 종종 성원권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가 나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성원권을 부여하는 것을 환대(hospitality)라고 부른다. 여기서 이 책의 핵심적인 문장이 나온다.

“한 사람이 자기 집 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을 들어오게 하여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한 사회가 그 사회에 도착한 모든 낯선 존재들을-새로 태어난 아기들과 국경을 넘어온 이주자들을-조건 없이 환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낯선 존재로 이 세상에 도착하여 환대를 통해 이 사회 안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환대의 핵심은 무조건적이라는 것이다. 각자가 사회 구성원이 될 때 아무 조건 없는 환대를 받았듯이,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를 맞이하는 행위는 그 누구에게든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온전히 주는 환대여야 한다. 이것이 혁명과 반혁명, 침략과 전쟁으로 점철된 야만의 역사를 겪으면서, 우리 인류가 어렵게 합의한 사회의 기본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공고한 지위를 얻은 환대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한 시도가 상당히 오랜 기간 노골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누군가는 자기 종족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며, 이교도를 무참히 학살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나라의 근간이라는 어떤 나라는 노골적으로 이민자를 탄압하고, 외교적 노력이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쟁을 서슴지 않는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어떤 입지전적인 나라는 학교 성적순으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것을 대부분의 국민이 수용하고, 미래 세대를 무한 경쟁으로 떠밀어 넣고 있다. 우리 각자가 이 사회에 들어올 때 어떤 환대를 받았는지, 또 우리는 환대를 갈망하는 누군가를 어떻게 환대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폭탄으로 무고한 백성들이 수없이 죽어가고 있는데, 유가‧환율‧증시가 온통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세태는 참담하다.

이 책은 2015년 발간되었는데, 상당히 어려운 내용임에도 절판되지 않고 독자들이 꾸준히 찾는 것 같다. 읽기 쉽지 않은 책임에도 몇 가지 덕목이 있는데, 책의 구성과 편집이 매우 정직하다. 예를 들어 프롤로그의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면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제목과 소제목을 읽고 그 개념을 이해했다면 굳이 내용을 읽을 필요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해야 프롤로그를 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고, 각 장과 절을 읽어야 장절의 제목을 그렇게 뽑은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300쪽 남짓의 책이지만 독서력(讀書力)이 최상이나 상 수준이 아니면 읽어 나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실망 마시라. 이 책을 읽어보았다는 시도만으로도, 읽긴 했지만 내용이 쉽지 않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책 좀 읽는’ 사람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김현경은 그림자를 팔고 부귀영화를 얻었으나,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온전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화를 소개하며, 성원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나노바나나로 그림).
나노바나나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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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승용 _ 학부를 졸업하고 수년간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느낀 바가 있어 농경제사회학부에서 농산물 유통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농업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직장이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나주로 이사해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gouksy@daum.net)

Last modified: 202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