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9:22 오후 143호(2026.01)

[선구자 인터뷰]
김상진 열사는 우리에게 매 순간 삶의 질문을 하게끔 만드는 존재
– 농기계 학생회 모임(90년대 학번 농기계과 학생회 활동가 OB모임)

임세진 편집위원

농기계과 90년대 학번들이 모임을 하며 ‘농기계 학생회 모임’ 이름으로 회비를 모아 상록문화재단을 통해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졸업 이후 소수의 모임으로 유지되고 있다가 3년전 카톡방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사적인 모임에 그치지 않고 서울대 발전재단에 기부로 활동을 넓힌 것이다. 탁핵집회에도 함께 나가 뜻을 공유하고 있는 ‘농기계 학생회 모임’ 박영준 동문을 서면으로 만났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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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저에 대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서울대 농생대 농공학과 농업기계전공 95학번 박영준입니다.

현재는 서울대 농생대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바이오시스템전공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5년 7월 27일부터 기획전략본부장(기획부학장)을 맡아 보직교수로서 서울대 농생대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농기계과 모임 이름은 무엇이고 모임의 주축은 어떻게 되는지요?

저희 모임의 카톡 그룹명은 ‘농기계 학생회 모임’이구요. ‘서울대 농기계과 학생회’란 이름으로 서울대학교 발전재단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모임의 주축은 서울대 농생대 농업기계전공 94학번에서 99학번까지의 동문으로 주로 농업기계전공 학생회 활동을 했던 분들입니다.

(총 12명, 94학번: 김재돈, 민윤호, 이종인, 최을규, 95학번: 박영준, 최상현, 황진성, 96학번: 신창섭, 이명호, 97학번: 김상범, 99학번: 이경태, 이준환)

언제부터 모이기 시작하셨는지, 그 계기는 무엇인지요?

졸업 이후 소수의 모임으로 유지되고 있다가 2022년 5월 카톡방이 만들어져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서울대 발전재단에 기부를 시작한 것은 2024년 7월부터입니다.

모임의 계기가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구요. 90년대 후반 같이 농업기계전공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학생회와 학생운동을 하면서 쌓았던 정을 사회에 나가서도 이어가고 싶은, 소위 ‘우리들만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친구들이 그리웠던거죠.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옛 추억을 안주 삼아 추억팔이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다 우리의 터전이었고 우리의 기반이 되었던 학과(구명칭: 농공학과 농업기계전공, 현명칭: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바이오시스템공학전공)에 좋은 일을 해보자고 뜻을 모으게 되었구요.

현재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비정기적으로는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구요. (너무 거창하게 포장을 했네요. 그냥 모여서 놀아요.)

앞에서 언급했던 ‘서울대 농기계과 학생회’란 이름으로 서울대학교 발전재단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기부금은 현재 바이오시스템공학전공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에게 등록금 형태의 장학금으로 매학기 지급됩니다. 현재 서울대 이공계 학부생 등록금이 297만원이고, 매학기 2명(학생회장 & 부학생회장)의 학생에게 등록금을 지급하기 위하여 12명의 선배들이 매달 10만원씩 모아 매달 100만원씩 서울대학교 발전재단에 정기후원(기부)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뜻을 같이 하는 농업기계전공 졸업생들을 더 많이 모아 바시공(바이오시스템공학전공의 줄임말) 학생들 장학금뿐 아니라 바시공 학부생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더 많이 제공해줄 생각입니다.

또한, 2024년 12월부터 2025년 3월까지는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여 오랫만에 거리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였습니다. 물론 거리상 같이 하지 못한 선후배들도 많았지만 마음은 같이 했던 오랫만에 뜻깊은 집회 참석이라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저희가 열심히 활동했던 90년대 말의 집회와 사뭇 다른 느낌의 집회 문화와 참석자를 보면서 집회 문화에서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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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지요?

앞에서 언급한 바시공 학생회장단(학생회장 & 부학생회장)을 위한 등록금 기부입니다. 그리고 등록금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학생회장단이 바뀔 때마다 기존 학생회장단과 신임 학생회장단을 식사 자리에 초대하여 그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학생회 활동을 하는지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전 우리의 이야기도 해주면서 학생회장단이 홀로 외롭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졸업한 선배들이지만 멀리서라도 활동하는 우리 후배들(학생회 임원진)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주고요.

요즘 재학생(후배 학생회장단)의 가장 큰 고민거리나 학생활동의 이슈는 무엇인가요?

예전의 학생운동에 집중하던 학생회와는 다르게 요즘 학생회장단은 학부생들의 단합(함께하는 자리 마련)과 새내기들에게 전공을 제대로 알리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더라구요. 학부생들의 단합을 위한 행사로는 새터, MT, 체육대회 등 예전의 학생회에서 진행하던 사업과 큰 차이는 없으나 이 행사를 학부생만의 축제가 아니라 교수님, 대학원생들이 다 같이 할 수 있는 전공(학과)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더라구요. 또한, 학부제 이후에는 2학년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선택하다보니 우리 전공(바이오시스템공학전공)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지, 우리 전공의 장점을 어떻게 신입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아보였습니다.

이 모임 구성원이 90년대 학번으로 보이는데 30년전 학창시절 가장 뜨거운 (학생운동)이슈는 무엇이었으며, 당시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었는지요?

제 기억으로 그 당시 가장 큰 학생운동 이슈(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김영상정부의 ‘대선자금공개와 교육재정확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부적으로는 1학년때(1995년)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했던 기억이 있구요. 이때는 동아리활동(녀름지기)을 하던 시기인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관악 단식단 구성원으로 활동하였고, 2박 3일 단식하면서 관악캠퍼스를 뛰어다니며 구호를 외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학년 때(1996년)는 ‘연대항쟁’이 있었습니다. ‘연대항쟁’에 저는 개인적으로 같이하지 못하였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통일을 외치던 많은 선후배 친구들이 다치고 연행되던 현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한, 그런 모습을 외부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강경진압하는 공권력에 대한 분노와 함께 친구들과 같이하지 못했던 미안함이 지금도 제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등록금 때문에 알바를 하면서 학교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 서울대 학생들은 소위 강남 출신도 많고 학교장학금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선배들이 지원하는 장학금에 대한 가치(?)30년 전과 비교해보면 어떤 느낌이신가요?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제가 학부 다닐 때는 전액장학금, 기성회비장학금, 수업료장학금 등 장학금을 받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느꼈습니다. 또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 장학금뿐 아니라 국가장학금과 외부장학금(주로 동문 및 동문 지인들이 주시는 장학금)이 많다보니 기본 학점(평점 2.7: 이 학점이 90년대에는 낮은 학점이 아니였지만 지금은 매우 낮은 학점입니다) 이상이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습니다. 그렇다보니 요즘 학생들이 장학금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 자랑스러움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많지 않다보니 장학금은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장학금을 주신 분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현하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꼰대 같아 보이겠지만 너희들이 지금 받고 있는 그 장학금을 나는 그렇게 받아보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모임의 의미, 방향은 어떻게 되는지요?

앞에서 언급했드시 서울대 농생대 농업기계전공(현, 바이오시스템공학전공)을 졸업한 선배들로서 우리 전공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이 학과와 전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특히, 바시공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전공의 발전과 학부생들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회장단이 학생회 활동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모임에 참가한 회원들이 각자 한마디씩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잘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단, 모임의 장소와 참석자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번 모임은 광주와 전주에서 생활하시는 민윤호님 부부와 최을규님이 수도권(부천)으로 시간을 내주셔서 성사된 모임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일정에 맞춰 날짜(25년 12월 30일)와 시간(오후 5시)이 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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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94학번 이종인님의 집 (부천시 송내동)

참석자: 사진의 왼쪽부터 안송희(95학번 황진성 아내), 민윤호(94), 이준환(99), 최을규(94), 이종인(94), 박영준(95), 황진성(95)

대화 중 토론 주제: 기부 등록금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 방안 (등록금 지급 학생 수 증가를 위한 고민), 이 모임의 성원을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모임의 활성화를 위한 고민)

사실 토론은 30분 정도 했구요. 나머지 시간은 모두 옛이야기와 농담 따먹기였습니다.(웃음)

이후 이 질문에 대해 99학번 이준환님이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지난해에는 거의 매주 여의도 거리로 나가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며 참 추운 겨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선후배님들과 함께 평온하고 따뜻하게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오랜만에 멀리서도 모임에 오신 선배들도 만나서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여러분의 학창생활 또는 졸업한 이후에 김상진이라는 인물은 어떠한 상징으로, 어느정도로 남아 있는지요?

아래 글은 신창섭님(96학번)이 작성해주셨습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 … 이것이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라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열사 김상진에게 민주주의, 조국이라는 것이 무엇이었기에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열사 김상진은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다는 것에 주저함은 없었던 것일까?

열사 김상진에게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 것인가?

열사 김상진에게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 것인가?

열사 김상진이라면 분단된 조국과 미국의 관세 압박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열사 김상진이라면 우리 아들, 딸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이순간 무엇을 할 것인가?

열사 김상진은 우리가 재학생이었을 당시에도, 졸업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사회인인 현재에도 우리들의 머리 속에 끊임없이 매 순간 우리를 둘러싼 세상 속에서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게끔 만드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열사 김상진은 우리 후배들에게도 세상과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존재로 살아남아 더 낳은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구자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선구자’라는 소식지가 있다는 것은 학부(95학번) 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진출하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선구자 인터뷰 전 보내주신 선구자 소식지와 홈페이지에서 많은 글들을 찾아봤습니다. 회원 동정, 50주년 행사 진행사항 등등. 정말 많은 농생대 선후배들이 다양한 곳에서 활동 당시의 신념을 가지고 김상진 열사가 그토록 바라던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하여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저도 주기적으로 출판되는 선구자를 매번 기다리게 될 것 같구요. 우리 모임에도 소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이 내용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농생대 후배들에게도 전달되어 농생대 선배들의 치열했던 삶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후배들이 본받을 것들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표지사진 설명]
왼쪽부터 앞줄: 이명호(96), 이종인(94), 박영준(95), 김재돈(94), 이준환(99), 최수현(22), 권준호(23), 강지원(23) 뒷줄: 신창섭(96), 황진성(95)
2024년 10월 25일 첫번째 장학금 수혜자인 최수현 양(24년도 부학생회장)과 25년도 신임회장단(권준호 군과 강지원 양)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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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진 _ 숭의여전 문창과에 입학, 문예창작보다 학보사 기사를 더 열심히 쓰고, 졸업 후 전국연합 기관지 ‘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신문 ‘건치신문’ 만드는 일을 하였다. 이후 성공회대 사회학과에서 공부하고 KOICA 봉사단을 다녀온 후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인터뷰하고있다. (sejin3025@hanmail.net)

Last modified: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