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58 오후 142호(2025.11)

[초보 비서관 일기]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가야할 길

김현수 환경재료과학 08

지난 호차에서 우려를 표했던 이진숙 후보자가 낙마하고, 최종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첫 교육부 장관은 최교진 교육감이 차지했다. 여성 안배는 포기하고, 비서울대와 충청권 안배는 유지한 결과다. 안배의 산물임에도 인선 자체는 비교적 적절하다. 3선 교육감으로서 지방교육행정 경험이 풍부한 그는 초·중·고 교육행정의 안정적 운영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실로서는 이번 정권 동안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큰 혼란이 없기를 기대할 것이다.

이번 정부가 선거에서 내세운 교육 공약은 크게 두 가지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이다. 두 공약은 각각 학벌 문제와 교권 문제를 상징한다. 전자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이며, 후자는 최근 부상한 현안이다. 두 문제 모두 교육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도대체, 교육문제가 뭐길래

질문을 던져보자. 교육문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 교육의 문제를 묻는다면 사람들은 너무 다양한 답을 내놓는다. “입시가 문제다”, “사교육이 문제다”, “학벌 체계다”, “교권이 무너졌다”, “학부모 민원이 지나치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문제의식조차 자극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정책은 언제나 대증적(對症的)이고, 단기적이며, 땜질식으로 반복된다.

입시 제도를 손볼 때마다 사교육은 더 커진다. 2024년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학생 수는 줄었지만 총액은 오히려 늘었고,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7만 7천 원으로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교권보호법을 제정했지만, 교사 10명 중 7명은 ‘교권이 더 약화됐다’고 응답했다(전교조, 2024). 전 정권이 ‘디지털 기반 맞춤형 교육’을 외쳤지만, 교실은 피로와 불안만 더해지고 있다.

이제 묻자. 우리는 이 문제들을 단순히 조금씩 개선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교육문제의 본질은 ‘교육정책’의 기술적 영역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사회정책’의 문제이며,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교육은 언제나 그 구조를 반영할 뿐이다.

교육 산출물로서의 지대

오늘날 교육은 인간 형성의 과정이 아니라, 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특정 자격과 특정 학벌이라는 산출물은 안정적이고 폐쇄적인 지위를 보장하며, 교육은 더 이상 ‘사다리’가 아니라 ‘벽’이 된다. 이 지점에서 교육은 지대(rent)를 생산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의사 면허다. 단 한 번의 면허로 평생 고소득이 보장되는 구조, 공급은 제한되고 수요는 압도적이다. 2023년 기준 의사 1인당 GDP 대비 평균 소득 비율은 5.06배로, OECD 평균(2.86배)을 크게 웃돈다. 이 면허는 단순한 자격이 아니라 배타적 권리이며, 강고한 지대를 형성한다. 의대 입학은 그 지대의 전방 관문이 되었고, 초·중·고 모든 교육 단계의 경쟁을 왜곡시킨다. 학생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의대 진학 가능성’으로 평가받고, 교사는 교육자가 아닌 ‘입시 데이터 분석가’로 전락하며, 학부모는 자녀의 ‘투자 수익률’을 계산한다.

따라서 교육문제 해결의 본질은 결국 지대 추구(rent-seeking)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내란수괴가 추진했던 의대 정원 확대는 바로 그 지대 해체를 향한 급진적 시도였다. 비록 정치적으로 실패했지만, 그 방향성만큼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학벌이라는 또 하나의 지대

의사면허만이 아니다. 또 다른 거대한 지대는 ‘학벌’이다. 서울대 졸업장은 공식 자격증이 아님에도 사회는 그것을 자격처럼 취급한다. 이 서열화된 대학 체계는 교육을 인간을 구분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

이 점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한 대학 확충이 아니라, 지대 해체를 위한 사회적 실험이어야 한다. ‘서울대급 대학’을 물리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학벌을 권력으로 만드는 구조를 분산해야 한다. 즉, 대학의 위상은 ‘입학의 희소성’이 아니라 ‘졸업 이후의 역량과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입학 중심의 구조적 왜곡

지대의 핵심은 희소성이다. 사회가 희소한 자격과 희소한 학교에 집착하는 한, 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철저히 ‘입학 중심’이다. 대입은 사회 전체가 몰두하는 국가 이벤트이며, 경쟁은 입학 이전에 모두 소진된다.

그 결과 대학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선별기관이 된다. 사회는 ‘어디를 졸업했는가’보다 ‘어디에 들어갔는가’를 중시하고, 대학의 평가는 입학생 수준으로 결정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학벌이 고정되고 이동성은 사라지며, 교육은 계층 고착의 도구가 된다.

대학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학이 곧 성공이 되는 순간, 학습의 동기는 사라진다. 교수는 가르칠 이유를 잃고, 학생은 배울 이유를 잃는다. 대학은 형식적 학점 취득의 공간이 되고, 사회는 교육의 본질을 잃는다. 2024년 기준 대졸자의 전공직업 일치도는 48.8%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이는 대학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경고음이다.

교육 밖에서 교육을 구해야 한다

결국 교육문제의 본질은 ‘교육정책’의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다. 학벌은 노동시장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고, 교권은 교사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강화되지 않는다. 교육의 혁신은 교실 안의 기술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제도 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정부는 선택해야 한다. 그냥 관리하며 방치하고 다음 정권으로 넘길 것인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구조를 건드릴 것인가. 지금의 기조는 ‘문제 최소화’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안정이 아니라 퇴행의 다른 이름이다. 변화가 두렵다고 멈춰선다면, 교육은 또 한 번 정치의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장을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무언가를 시작하라’는 최소한의 요청으로 쓴다.

진정으로 교육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교육 안에서 해답을 찾지 말아야 한다. 노동시장, 주거, 복지, 산업정책과 맞물린 종합적 구조개혁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교육은 더 이상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며,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도 변하지 않는다.

교육을 교육 밖에서 풀어야 한다.”

이 문장이야말로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가야 할 방향이다. 교육은 더 이상 ‘사다리’의 복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는 벽을 허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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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책보좌관으로 일하다 조희연 교육감의 직 상실 이후 국회에 새 둥지를 틀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최민희 의원실 선임비서관으로 일했다.(edu.tech.khs@gmail.com)

Last modified: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