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2:24 오전 140호(2025.05)

[추도사]
당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함께 걷겠습니다.

염태영 (수원시 무 국회의원, 농화학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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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열사님 오늘 우리는 당신의 이름 앞에 깊은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담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당신께서 이 땅의 자유와 정의를 향한 불꽃같은 의지를 품고 거침없이 삶을 내던진 그날부터 어느덧 반세기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은 당신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세월은 당신의 희생을 더 또렷이, 더 뜨겁게 우리의 가슴에 새겨 놓았습니다.

민주주의란는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 합법을 가장한 유신헌법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대 농과대학 캠퍼스의 자유 성토대회에 나선 김상진 열사는 당당히 독재 정권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신사복 바지에 흰 셔츠 차림으로 단상에 오른 당신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침착하고 담대하게 양심 선언문을 한 문장 한 문장 또렷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김상진 열사의 의거는 유신헌법 철폐와 독재 정권 퇴진,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80년 4월, 민주화의 봄이 오고 이곳 농대 교정에서 김상진 열사의 첫 장례식 겸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20살 청년인 저 염태영 또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날 다시 낭독된 양심 선언문의 한 구절 한 구절은 비수가 되어 제 가슴에 박혔고, 제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얼룩진 역사의 민낯을 마주했고,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해 내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물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저는 ‘그렇다’라고 답하겠습니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릅니다. ‘청춘 하나가 사라졌다’고. 그렇지만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 청춘 하나가 수많은 국민의 양심을 일깨웠다’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거리로, 광장으로 이끌었다’고.

작년 12월 3일 내란의 밤을 막아낸 것은 위대한 우리 국민들이었습니다. 국회로 달려와 계엄군의 장갑차를 온몸으로 막아 세운 시민도,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한 계엄군 앞에 선 저도, 그 순간 김상진 열사와 함께였습니다.
김상진 열사님 당신이 바랐던 세상은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뜻은 오늘도 정의를 부르짖는 청년의 목소리로, 불의에 분노하는 시민의 손끝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드립니다. 당신의 진심을 잊지 않겠다고, 그 희생 위에 부끄럽지 않은 내일을 만들겠다고, 당신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그 가치를 우리 가슴에 꿋꿋이 치켜세우겠다고.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당신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 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라던 당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지치지 않고 우리는 함께 걷겠습니다.
김상진 열사님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며 깊은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이제는 반세기를 뛰어넘어 k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이름 김상진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소서.

Last modified: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