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준 OBS ‘오늘의 기후’ PD, 농화학 88
<PD수첩>의 첫 방송이 임박했을 무렵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섀튼의 결별,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거대 방송국의 취재가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소문을 접한 뒤 ‘도대체 황우석에게 무슨 의혹이 있는 거지?’하는 질문보다는 ‘도와주진 못할망정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며 걱정했다. 줄기세포가 가짜로 조작되리라고 상상도 못 하던 때였으니까.
혹시 다른 의도가 있나, 이렇게 걱정스런 시선으로 뉴스를 검색하던 사람 중에 ‘하비지’도 있었다. 닉네임 하늘에 비친 지구, 그는 젊은 의사였다. 국가주의자도 전체주의자도 아닌, 그저 줄기세포 연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닌 서울대 의대 출신의 젊은 의사.
“저는 의학의 과제가 크게 두 가지라고 봤어요. 하나는 암이고 또 하나는 만성질환 중 신경계 질환들인데, 뇌졸중(중풍)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신경유래 만성질환은 줄기세포 연구가 활성화되면 가닥을 잡을 수 있다고 봤죠.”
그래서 그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친 뒤 생리학 실험실에서 신경계통 질환을 연구하기도 했다. 비록 연구 중심 의학자의 길 대신 개업의를 준비하며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지만, 그는 줄기세포 연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황우석 연구를 검색했다. 그런 하비지 앞에 <PD수첩>의 첫 방송이 시작됐다. 2005년 11월 22일 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PD수첩>입니다. 그동안 연구에 사용되어 온 난자의 윤리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황우석 교수는 숭고한 여성들이 기증한 난자만 사용해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PD수첩>의 취재결과 황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MBC <PD수첩>, 2005.11.22)
이날 방송의 핵심은 내용은 순수하게 기증된 난자만 사용했다는 황 교수의 말과 달리 600여 개의 매매된 난자가 사용되었고, 여성 연구원들의 난자 제공의혹도 사실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팩트였다. 그런데 하비지는 이날의 방송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자 수급은 기본적으로 의사 영역이죠.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에게 1차적 책임이 있었고 실제로 미즈메디는 당시 검찰수사에 연루되어 있었고, 또 연구팀의 생명윤리적 관리에 대해서는 교신저자였던 서울대 의대 교수님이 해명하셔야 하는 부분인데 그 교수님은 아예 비추지 않고, 노 이사장도 그냥 주변인처럼 비춰지고 모든 포커스를 난자를 받아 연구한 황 교수에게만 맞춰요. 이건 뭔가 공정하지 못한 것 아닌가….”
그가 또 한 가지 이상하게 생각한 부분은 왜 법적 잣대(생명윤리법)가 만들어지기 전에 발표된 2004년 논문의 난자윤리에만 초점을 맞췄을까였다. 마치 신호등이 만들어져 질서 있게 운영되는 최근 사진은 보여주지 않고 신호등 만들어지기 전의 일부 혼란상만 보여줘 그 지역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려 한다는 느낌….
“실제로 연구팀이 생명윤리 논란으로 중단한 적 있었잖아요. 그때 생명윤리법에 맞게 새로 자문받아서 환자 동의절차부터 난자관리까지 모든 걸 법에 맞게 논문을 썼는데, 방송은 그 이전에 일어난 일만 폭로하는 거예요. 이상했죠. 무슨 의도가 있나, 이건 구실이 아닐까….”
이처럼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제작자들만큼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해도 나름의 직관이나 선별 기준을 갖고 방송을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나는 ‘수용자’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낀다. 시청자나 청취자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수용자)가 아니라 방송을 모티브로 해 능동적으로 의미까지 부여하는 또 다른 방송의 주체인 ‘사람’들이다. ‘Mass’(덩어리)가 아닌 ‘사람’이다.

동물 복제 실험중인 황우석 박사 (촬영 : 노광준)
방송 직후 MBC <PD수첩> 시청자 게시판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윤리 따위 뭐가 중요하냐’는 국익적 관점들도 있었지만 자신도 의학연구하는 데 연구자가 자신의 난자를 제공하면 안 된다는 헬싱키 선언을 처음 들어본다며 너무 가혹한 잣대를 연구팀에 들이대 연구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항의도 있었고 가수 강원래 씨처럼 어렵게 출발한 이 연구를 흔들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목소리도 있었다. 그 와중에 11월 24일, 황우석 교수가 공식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모든 논란과 파문의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상당 부분을 인정했다. 연구원 난자 제공은 사실이며. 밝히지 못해 죄송하다. 내가 책임지겠다.
“저는 국민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속죄하기 위해 오늘부터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직을 비롯한 정부와 사회 각 단체의 모든 겸직을 사퇴합니다.” (황우석, 2005.11.24)
그는 초췌한 얼굴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후 <PD수첩>에 대한 비판여론은 분노 수준으로 증폭됐다. 회견 직후 네이버가 황 교수의 공직 사퇴에 대한 인터넷 찬반투표를 했는데 90%가 사퇴에 반대했다. 기사마다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거의 9 대 1의 비율이었다. 황 박사 지지카페는 하루 새 3천 명이 넘는 신규회원이 가입했다. 이 와중에 ‘강압취재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황우석을 주저앉히려고 왔다더라’라는 설까지 퍼졌다. 자연스럽게 ‘MBC는 매국방송’이라는 말이 나왔고 온라인상에서는 <PD수첩> 광고주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11월 28일부터 MBC 앞 촛불시위가 시작됐다. 그리고, 11월 29일 <PD수첩>의 광고가 모두 끊겼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한국캘러웨이가 29일 ‘PD수첩’ 방송 시간대에 나갈 예정이던 광고를 취소키로 결정함에 따라 ‘PD수첩’ 방송 시간대에 광고가 나가던 12개 기업 모두 광고를 취소했다.’ (연합뉴스, 2005.11.28)
사태가 과열되자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까지 중재에 나섰다. 그는 이 사안을 어떻게든 폭력적으로 귀결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나도 MBC의 이 기사가 짜증스럽다. 그리고 취재의 계기나 방법에 관하여도 이런저런 의심을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연구과정의 윤리에 관하여 경각심을 환기시키는 방법이 꼭 이렇게 가혹해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막상 MBC의 이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또 다른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노무현, 청와대브리핑, 2005.11.27)
훗날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양쪽에서 비판받았다. 황우석 비판자들은 노 대통령이 앞에서 언급한 ‘나도 MBC의 이 기사가 짜증스럽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노무현에게 황우석은 흑역사였다고 말했고, 황우석 지지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뒤에서 언급한 ‘MBC의 이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또 다른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MBC와 검찰수사 뒷배에는 노무현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은 낚이지도 않았고 언론과 검찰에 개입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과학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야 하고, 민주주의자로서 대화와 토론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대통령까지 중재에 나선 마당에 남은 건 필드에 선 검투사들의 대처방식이었다. 여전히 패를 쥐고 있던 <PD수첩>은 방송강행을 선택했다. 광고가 다 끊어진 11월 30일, 방송 말미에 최승호 CP는 황우석 의혹 다음 방송을 예고했다.
“취재 과정을 담은 후속 편을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방영하겠습니다.”
굳은 의지, 그러나 제작진은 강행 과정에서 두 가지 실수를 한다. 하나는 정직하지 못한 해명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제기된 강압취재설에 대해 11월 30일 방송을 통해 이렇게 해명했다.
“취재 과정에서 위협과 협박이 있었다는 이야기부터, 제보자가 처음부터 잘못된 제보를 했다는 의혹까지 많은 왜곡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최승호, 2005.11.30)
정직하지 못한 해명이었다. 두 번째 실수는 어설픈 폭로였다. 제작진은 12월 2일 기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줄기세포가 가짜일 수 있음을 드러냈다. 패를 깐 거다. 그런데 이렇게 깠다. 황우석 줄기세포를 자체 검증해 보니 건네받은 15개의 시료 중 대부분이 아예 판독도 되지 않았고 반복실험에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분명히 줄기세포 5개 중 1개는 DNA가 완전 불일치로 나왔다고, 그래서 방송을 강행하겠다고, 그러나 이 사실을 전달받은 각 언론사의 과학전문 기자들은 ‘줄기세포의 정체’보다는 ‘<PD수첩>의 검증능력’을 의심했다.
‘서울대의대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는 “만약 3번의 동일한 검사에서 결과가 각기 다르다면 시료가 좋지 않았을 가능성과 오염됐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상황이 이렇다면 이 줄기세포의 진위에 대해 단정 지어 평가할 수 없다”라고 견해를 밝혔다.’(연합뉴스, ‘의혹’만 더해가는 DNA 검증과정, 2005.12.2)
이처럼 <PD수첩>이 날린 회심의 한 방이 제대로 명중되지 못한 가운데, 황우석 측의 카운터 펀치가 제대로 꽂혔다. 12월 4일 <YTN>의 단독보도,
“미국에 있던 연구원들은 <PD수첩>팀이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취소되고 검찰에 구속될 것을 여러 차례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원들은 <PD수첩>이 검찰 수사를 계속 거론하면서 연구원들의 미국 생활에 대한 보장도 언급했다고 말했습니다.” (YTN, 2005.12.4)
강압취재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거다. 어떻게 되었을까, 이 뉴스를 본 하비지는 <PD수첩>이 황우석 난자의혹을 검증하며 인용한 한 생명윤리학자의 인터뷰를 떠올리고 있었다.
“목적이 좋다고 해서 과정을 무시했다는 것은 연구 자체의 도덕성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나라 학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아주 몹시 우려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2005.11.22)
목적이 좋다고 해서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하비지들은 이제 이 질문을 MBC <PD수첩>을 향해 되묻기 시작했다. 저녁노을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12월 4일 일요일
<PD수첩>이 먼저 무너졌다. 시민들의 광고중단 요구는 <PD수첩> 광고를 다 끊은데 이어 프라임 타임이던 <뉴스데스크> 광고 중단으로 이어졌다. 오후 네시 반, MBC 경영진은 긴급임원회의를 열었다. 제작진의 취재윤리 위반 사실을 확인한 뒤 즉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아울러 제작진에 대한 징계도 시사했다. 이날 밤 <뉴스데스크>에서는 이 사실과 함께 대국민 사과성명을 자세히 보도했다. <YTN> 보도 6시간 만에 이뤄진 대응이었다.
12월 5일 월요일
논문조작 의혹이 온라인상에서 점화됐다. 과학재단과 포항공대의 지원으로 운영되던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소리마당에는 줄기세포 논문 사진의 중복 의혹이 올라왔다. 서로 다른 줄기세포의 사진인 듯 논문에는 적혀있지만 아무리 봐도 하나의 줄기세포 사진을 이리저리 편집해 중복게재한 것처럼 보인다는 의혹제기, 글쓴이는 ‘익명’을 뜻하는 닉네임 ‘anonymous’였고 글의 제목은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였다. 이 글은 1만 5천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200개 넘는 댓글이 달리며 황우석 논문조작 증거 찾기 게임이 시작됐다.
12월 6일 화요일
<PD수첩>은 자연다큐멘터리로 대체됐고, 최승호 책임프로듀서와 한학수 피디가 대기발령 상태에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후 인사위원회는 최승호, 한학수 피디에게 감봉 1개월, 최진용 시사교양국장에게 근신 15일 징계조치를 결정했다.
한편 MBC 방송국 앞에서 항의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 중에는 가수 강원래도 있었다. 황 박사 줄기세포 연구 체세포 공여자이기도 한 그는 촛불 현장에서 황 박사에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응원의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황 박사의 응답은 없었다.
12월 7일 수요일
탈진상태에 있던 황 박사가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입원은 비밀리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병원 앞에 진 치고 있던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이른 새벽에, 병원 관계자들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통로를 통해 이뤄졌다. 황 박사의 입원을 두고 ‘헐리우드 배우의 명 연기’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문의들의 견해는 다른 것 같다. 성명훈 서울대병원 기조실장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심한 피로와 수면장애, 스트레스가 겹쳐 탈진 상태이며 일정 기간 가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훗날 법정에서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 또한 이렇게 증언했다.
“체중이 4kg 줄고, 서울대 병원에 입원 당시에도 스트레스가 심하고 자살시도 등 극단적인 위험행동의 부담이 있어서 보호자 및 해당 과에게 ‘이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전달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정신과 의사들도 ‘중증 우울증’이 있으니 잘 돌보라 진술했고 이를 비서와 가족들, 이병천 교수 등에게 연락해 알렸습니다.” (안규리 교수의 법정증언, 2008.4.8)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황 교수 병실로 몰래 진입해 사진을 찍고 단독보도한다. 수염도 깎지 못한 덥수룩한 얼굴로 병실에 잠들어 있는 황 박사의 사진,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였다. 그 기사는 이렇게 물었다. 황 교수 옆에 정부는 없었는데 박기영 보좌관은 어디에 있냐고?
박기영 보좌관(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정말 어디에 있었을까? 훗날 그녀를 만나 직접 물어봤더니 그녀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상황을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당시 노 대통령은 뭐라고 답했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과학으로 검증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한 대통령님의 입장이셨어요. 의혹이 있다면 어쭙잖게 언론이 과학논란을 검증하는 것보다는 누가 봐도 신뢰할 수 있는 국제 공동 검증단을 꾸려서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의혹을 털고 가자, 정확하게 책임 소재를 가려내고 단 연구는 연구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입장이셨습니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 인터뷰, 2017.8)
그러나 대통령이 원했던 ‘공정한 과학검증’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해관계자들은 훨씬 더 기민하게 움직였다.
12월 8일 목요일
섀튼이 소속된 피츠버그대학이 ‘논문 재검증’의 불을 당겼다. 피츠버그 현지언론들은 전날 피츠버그 대학 연구윤리국(ORI)은 논문 사진 의혹 등을 조사하기 위한 임시 조사위원회를 꾸려 데이터 재검증 및 관련 연구자 면접조사에 착수했고 그 대상에는 S를 비롯해 한국에서 파견된 여러 연구원들이 포함될 것임을 시사했다. (뭔가 대대적인 조사가 시행될 것처럼 보도됐지만 몇 개월이 지나 발표된 피츠버그대 최종보고서 결과는 약식이었다. 섀튼 교수는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연구하고 있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피츠버그 대학의 조사위원회는 보호막이었으며, 오히려 한국의 과학계에게 ‘뭔가 빨리 움직여야겠다’는 시그널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날 오후 서울대 치의대·의대·생명과학부 교수 30여 명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드리는 건의문을 전달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소장파 교수들은 건의문에서 ‘국제 학계에서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진위 문제가 명확하게 규명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서울대 차원의 진실성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12월 9일 금요일
서울대 총장이 황 교수 병실을 찾아와 재검증에 응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황 교수 병실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안부전화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낸 불도장까지 각계의 격려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날 오전에는 야당을 이끌고 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유정복 비서실장과 함께 병실을 찾았다. 이후 오전 10시경, 서울대 총장이 ‘기 쾌유’라고 적힌 난을 들고 찾아와 황 박사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병원장에게 거듭 황 박사의 건강상태를 주시해 달라고 당부한 총장은 이날 황 박사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조사위를 꾸려 잘 처리 할테니 황 박사를 잘 이해하는 전문가 50인의 명단을 보내달라.
“내가 오늘 오후에 조사위원회를 가동해서 (이 문제를) 잘 처리하겠다고 하시면서 ‘황 교수를 잘 이해하는 이 분야 전문가 50명의 명단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황우석 박사 인터뷰, 2015.3.24)
황 박사는 이날 서울대 총장의 스탠스는 자신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고 말했다. 검증을 맡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해 달라는 말까지 건넸으니,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황 박사의 부인이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총장에게 계속 고맙다고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그러나 훈훈했던 이날의 분위기는 곧 싸늘하게 바뀐다. 어찌된 일인지 황 박사가 이날 추천한 50인의 연구자 중 단 한 사람도 서울대 조사위원으로 선임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당시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교수 한 사람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총장에게 완벽하게 당한 거라고. 정말 공정한 조사를 위해 조사 당사자에게도 추천받은 게 아니라 과학계 중에 누가 황우석 라인인지 간을 본 거라고.
“결과적으로 황 교수님이 추천한 (이 분야) 전문가들은 다 빠지고 비전문가들로 조사위가 구성된 거죠.” 총장의 의도는 실제 조사위원으로 임명하기 위해 황 교수님에게 50인의 명단을 달라고 한 게 아니라, 과학계에서 누구누구가 황우석 인맥인지를 파악하고 그들을 선임대상에서 제외시키려고 한 것 아닌가. (D교수, 2015.3.26)
12월 10일 토요일
이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나는 ‘국익인가 진실인가’라고 하는 마치 철학 시험 문제와도 같은 답 없는 질문을 거듭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방송국 시청자위원장을 맡고계시던 미디어 학과 교수님은 ‘나도 MBC 출신이지만 세계 어느 방송도 건드리지 않는 자국의 국익을 어쭙잖게 건드렸다’며 <MBC>를 성토하고 계셨다. 반면 <MBC>에 근무하던 피디 후배는 이 논란 이후 명사들이 MBC 출연거부를 하는 통에 자신이 맡고 있던 <잠깐만> 캠페인도 존속이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하며 내게 혹시 출연해 줄 만한 명사가 있는지 추천을 부탁했다. 당시 <MBC> 구성원들은 방송국 존립의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진실인가, 국익인가, 그런 가운데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던 글 한편이 눈에 띄었다.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의 집필자 송지나 작가의 글이었다. 시사프로그램 작가 출신인 그녀는 자신은 33조의 국익이나 애국심에는 관심이 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PD수첩>에 분노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었다.
‘80년대 중반, 저는 소위 사회고발 다큐멘터리의 구성작가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회고발 프로그램이란 것은 거의 최초였던지라 나름대로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요. 어느 날, 어떤 모피디가 찍어온 테잎을 프리뷰 할 때였습니다. 안마시술소에 대한 프로그램이었고, 피디는 그곳에서 영업을 하던 젊은 아가씨 하나를 앞에 놓고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요지는…. 안마만 한 게 아니라 매춘도 했다는 증언을 받아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대답도 안 하려는 여자를 설득하는 피디의 대사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 못 하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을 겁니다.
“당신이 했다는 게 아니잖아. 당신은 강요를 당한 걸로 하자고. 그렇게 해준다니까. 이봐이봐 다 아는 얘기잖아. 말을 해.”
그러다가.. 예. 그러다가.. 느닷없이 피디가 여인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여인은… 그 젊은 아가씨는.. 프로그램 중, 그 안마시술소가 매춘행위를 한다는 걸 증언해 줄 유일한 대상이었겠지요. 방송날짜는 다가오고 더이상 취재 여유는 없어서 초조 해졌겠지요. 이른바 매춘여성이어서 인권 따위는 돌보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요. 그렇다 해도 그럴 수는 없는데 그랬습니다. 다시는 그 피디의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고, 단 한마디도 더는 말을 섞기 싫어서 정면에서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았다면 아마도 그 피디는 대답했겠지요.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라고.
“안마시술소가 사회의 악이란 걸 알고 있지 않느냐? 우리가 아니면 누가 그 실태를 널리 알리겠는가?
그 여자 하나만 입을 열어주면 되는데 좀 무리한 방법쯤은 어쩔 수 없지 않나? 이 사회를 위해서 진실을 밝혔을 뿐이다.”라고요. (중략) 오늘 아침 보도에는 한학수 피디가 ‘그래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는군요. 그가 생각하는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말살시키며 추구해도 되는 가치란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가치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가요? (중략) 아마 황 박사님과 피디수첩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33조의 국익이나 애국심 따위의 이유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더한 국익이나 더한 애국심에도 냉소하는 우리들인걸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선 느꼈던 것은, 안마시술소에서 매춘 행위를 했건 안 했건 그 진실과는 상관없이 피디라는 힘으로 그 여인의 뺨을 후려친 행위에 대한 분노 아닐까요? (송지나, 진실에는 눈이 없다, 2005.12.9)
12월 12일 월요일
오전 11시 노정혜 연구처장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에 대한 기본 개요를 밝혔다. 이 와중에서 “황 교수팀에서 전체 실험에 대한 재연 요청이 온다면 언제든지 재연을 할 수 있다”며 재연실험 가능성을 열어놨다. 재연실험은 동료 학자들의 평가만으로는 실체확인이 불분명한 첨단 과학 논란에 대해 본인이 직접 다시 실험을 해 스스로의 주장을 입증하도록 하는, 선진국 과학검증에서는 자주 사용되어 온 검증방식이다. 이날 노정혜 처장은 기자들에게 ‘앞으로 이런 모든 과정이 제대로 규명되기 위해서는 황 교수님이 연구실로 돌아가서 안정된 연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과열된 취재로 황 교수 연구를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운명의 12월 15일이 밝았다. 알려지지 않은 비화들을 공개한다.<다음 호에 계속>
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2023년 3월부터 OBS 라디오(FM99.9MHz)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를 연출하며 한국PD연합회가 선정한 2023년 5월 ‘이달의 PD상’과 제50회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별명 기후보좌관.(pdnk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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