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지 전 노래모임 새벽 활동가, ‘벗이여 해방이 온다’ 작사/작곡자

‘노래모임 새벽’은 내 젊은 날의 훈장이자 열정을 불살랐던 흔적이다.
‘노래모임 새벽’ 이야기를 하려면 대학 입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0년 5월 광주를 겪은 바로 다음 해, 대학에 입학했다. 관악산에 위치한 캠퍼스에는 사복 무술경관이 상주하며 감시와 폭력을 일삼았다. 그해 5월 시위에서 무력하게 맞으며 끌려가기만 하던 학생들을 도서관에서 지켜보던 한 4학년 선배는 ‘전두환 죽어라!’를 외치며 도서관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기만 하던, 모범생의 틀을 벗어난 적 없던 신입생에게 이 모든 일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다는 열망에 찾아간 노래 동아리 ‘메아리’의 문은 무거웠다. ‘고뇌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 신입생 모집 문구가 마음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리고 마주한 전혀 다른 현실과 새롭게 접한 아름다운 노래들은 마법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깊이 빠져들게 했다.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대학 4학년이 되었다. 졸업 후에도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을 꺾고 싶지 않았다. 전공인 자연과학은 어느새 뒷전이 된 지 오래였다. 마침 졸업한 동아리 선배들이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모임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들이 모여 아현동 시장 어귀 고개에 있던 ‘애오개 소극장’에서 노래 이야기 ‘가치꽃’ 공연을 올린 것이 바로 ‘노래모임 새벽’의 시작이었다.
나는 선배들 심부름에 열심을 냈다. 팸플릿을 펜으로 직접 그리고 인쇄했으며, 좁은 계단 입구에 의자 하나를 놓고 앉아 표를 받기도 했다. 궂은일로 뒷바라지를 시작한 것이다. 선배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노래’라는 이론지 동인을 만들어 무크지도 발행하고, 연우무대 같은 연극 극단을 비롯한 다른 장르의 선배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며 자신들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 중심에는 메아리 출신의 문승현 선배와 김창남 선배가 있었다.


그해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문승현 선배의 부름을 받고 혜화동에 있던 김민기 선배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새로운 노래극을 제작해 공연하려 한다며 내게도 노래를 만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일제강점기를 돌아보며 일본의 문화 침탈을 고발하려는 주제의 노래극이었다. 원혼을 부르는 듯한 슬프고도 ‘그로테스크’한 자장가를 써보라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거의 매일같이 혜화동으로 출근했다. 비록 내 노래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지만, 선배들에 의해 완성된 《또다시 들을 빼앗겨》 공연은 성공적으로 막을 올렸다.
같은 해인 1984년, 여러 장르의 문화운동가들이 모여 ‘민중문화운동협의회’라는 단체를 출범시켰다. ‘노래모임 새벽’도 그 일원이 되었다. 당시 공연은 녹음·대량 복제되어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이름으로 전국에 배포되었다. 그렇게 암울한 역사 속에서도 우리의 문화적 긍지를 세우려는 노력들이 면면히 이어졌다.
19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노래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은 ‘노래 테이프’ 제작과 배포였다.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은 경찰이 철수한 대학 캠퍼스의 초청 공연이나 교회, 성당 같은 종교단체 공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반합법적인 공연이었기에, 공권력이 막아서거나 진압을 시도하면 무기력하게 내어줄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또다시 들을 빼앗겨》 공연도 전주의 한 성당과 대학 캠퍼스 초청 공연이 있었기에 간신히 가능했다. 따라서 우리의 노래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는 공연보다 테이프 제작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우선 사업이었다.


1986년에 접어들면서 선배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노동운동권으로, 일부는 대학원에 진학해 문화이론으로 방향을 잡았다. ‘노래모임 새벽’은 새로운 구성원으로 재편되어야 할 당면 과제에 맞닥뜨렸다. 나는 전업적인 노래운동가로 나서기 위해 그 일의 전면에 서게 되었다.
비록 주택가 지하에 계란판으로 겨우 방음공사를 마무리한 초라한 시설이었지만, 우리만의 전용 상설 작업 공간도 확보했다. 후배들을 모아 상시적으로 조직·교육하고, 본격적인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노래들도 새롭게 창작해 냈다. 〈이 산하에〉, 〈그날이 오면〉, 〈사계〉, 〈귀례이야기〉, 〈벗이여 해방이 온다〉, 〈부활하는 산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등의 노래들이 바로 이 시기 ‘노래모임 새벽’에서 창작되고 테이프로 녹음되어 대중 속으로 퍼져나간 대표곡들이다.
1984년 창립되어 1993년까지 활동했던 ‘노래모임 새벽’의 당시 녹음과 공연 실황 중 일부를 엄선하여, 정성스럽게 음원을 복원하고 올해 2026년 음반으로 출시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는 단지 1980~90년대의 옛 추억을 들추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로부터 노래운동과 민중가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그 정신은 여전히 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점을 되돌아보고 기록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를 위해 최근 ‘노래모임 새벽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앞으로 ‘노래모임 새벽’의 활동과 성과물들을 잘 정리하고 복원하여 간직하는 사업을 이어가고자 한다. 이번 음반 발매는 그 대장정의 시작일 뿐이다. 암울했던 시대를 함께 뚫고 나아온 여러 동지들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기대해 본다.
사단법인 김상진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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