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2:15 오전 142호(2025.11)

[선구자인터뷰]
“이분도 우리랑 비슷한 나이였구나!”
선배들이 지켜낸 민주주의 가치. 저희가 이어나가겠습니다.

제41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생회장 김누리(식품생명공학전공 20)

부학생회장 조윤서(농경제사회학부 23)

임세진 편집위원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비가 오는 날 관악캠퍼스에서 농생대 학생회장단과 인터뷰가 진행됐다. 학생회가 몇 년째 구성되지 않다가 2024년 4월에 구성된 학생회 [청명]의 뒤를 이어 2025년도 학생회 [너울]이 2024년 12월에 구성되어 오랜만에 1년을 꽉채워 활동을 진행했다. 지난 4월에는 김상진열사 의거 50주년 기념행사에 학생회와 재학생들이 참여하여 행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12.3사태를 의연하게 대처하고 농생대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풍성하게 만들었던 학생회장단을 만나 농생대 후배들의 생각과 고민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인터뷰에는 제41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생회장 김누리(식품생명공학전공 20)학우와 부학생회장 조윤서(농경제사회학부 23) 학우가 함께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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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진 편집위원(이하 임세진): 이번에 선관위 공고 떴던데요.

김누리 학생회장(이하 김누리): 맞습니다. 선관위는 원칙상 구성돼야 되기 때문에 투표가 진행이 되든 안 되든 일단 공고 하고 있는데 후보자가 나오는 건 또 별개의 일이니까요.

임세진: 후보자가 안 보이나요?


김누리: 그렇다고 막 본인 의지 없는 애들을 막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거다 보니까요. 아쉽습니다.


임세진: 학생회 활동에 대해 왜 의지들이 없을까요?


김누리: 학생회가 이전에는, 단어 선택이 조심스러운데요. 사실 한 10년 전만 해도 학생회도 운동권이랑 깊게 연관이 있었고 그때만 해도 비권(비운동권) 학생회가 신기할 정도였는데 점점 가면 갈수록 그게 당연화되다 보니까 이제 학생회의 필요성을 많이들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학생회 일을 하는 입장에서 축제 하나 하는 것도 정말 많은 인력과 노력, 시간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데 학생회를 전혀 모르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누군가 축제 준비해 주고, 대학 오기 전부터 대학교 가면 축제는 당연히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요새 다양한 활동들도 많아져서인지 학생회 활동에서 스펙적인 메리트도 많이 못 느끼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왜냐하면 들이는 노력이 더 크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학생회 활동을 조금만 해보면 얻어 갈 것도 정말 많다는 걸 알 텐데 시도조차 안 하는 친구들이 분명히 많을 테니까요. 아쉽습니다.

배운 것이 더 많은 학생회 활동


임세진: 학생회 하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하셨는데 학생회장단으로 지낸 1년을 돌아볼 때 어떤 점들이 기억에 남는지요?


김누리: 저는 학생회장이니까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학생회를 함으로써 얻어갈 수 있는 것으로는 20대 초반에 사업 하나를 맡아서 준비하고 예산을 써가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학생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얻을 경험을 미리 해보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학생회장으로서 얻는 걸 생각하면 저는 선배님들을 이렇게 만나 뵙는 것도 제가 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상진기념사업회 선배님들도 몇 번 뵙고, 동창회 선배님들도 자주 뵙고, 사업을 진행하면서 도움 주실 분들도 직접 찾아뵙는데요. 그런 선배님들이 제가 나가고 싶은 분야에 이미 나가 계신 인생 선배님들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입장에서 그분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다지고, 학생회적인 측면에서 만나 연이 되어서 개인적인 것도 여쭤볼 수 있는 관계를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은 메리트라고 생각합니다.


조윤서 부학생회장(이하 조윤서): 저는 학생회를 되게 오래 했거든요. 입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3년을 했는데 그렇다 보니까 집행부원에서부터 부학생회장까지 다양한 직책을 해봤습니다. 1학년 때 집행부원으로 있을 때는 선배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많이 배울 수 있었고요. 제가 사실 처음 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남한테 피해를 안 끼칠 수 있을까 하고 의기소침했었는데요. 또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선배들과 교류가 별로 없어서 가까운 선배라도 어렵게 생각했었는데 선배들이 아무 대가없이 친절하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학업 생활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선후배 간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학년 올라가면서 중요한 사업이었던 농활이랑 체육대회의 중간 관리자로 일을 하게 됐는데요. 위로는 학생회장단과, 아래로는 팀원 후배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중간 관리자의 고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학생회장단과의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어서 많이 힘들어 했었는데 제가 올해 학생 회장단이 되어 보니까 그때 학생회장단의 입장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다양한 입장에서 일을 해보면서 각 직책마다 갖는 고충이 다 다르구나, 그리고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회가 일반 회사랑 달리 수혜적인 측면에서 일을 하는 거여서 다 같이 이 일을 정말 하고 싶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아무도 원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학생들이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임세진: 노하우가 좀 생겼나요?


조윤서: 어쨌든 사람 간에 하는 일이고 사람 때문에 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 집단이 싫어지게 만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친화력이 좋은 성격이라 일단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랑 많이 친해지고 그래도 ‘저 사람 때문에라도 일한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끔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결국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아서 계속 일을 하게 됐던 것도 있거든요. 그래서 유대관계를 먼저 많이 쌓았고요. 그다음에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열심히 일하지? 나도 보고 배워야겠다’를 저도 선배들한테 배웠기 때문에 후배들도 저를 보고 그렇게 생각해 하도록 열심히 일했습니다.


김누리: 아직까지 뭔가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저는 작년에 총학생회 국원으로 들어가서 국장단하고 농생대회장까지 하게 됐는데요. 학생회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회에 나가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서 점차 올라갈 거고 연차가 쌓여가면서 그 몇십 년의 과정을 저희가 몇 년 만에 일종의 시뮬레이션 돌리는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생활을 경험하며 사람과 일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각각의 개인에게 동기를 어떻게 줘야 되는지가 저는 관리자 혹은 그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계속 많은 고민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임세진: 두 분 다 학생회에서 여러 활동을 하셨는데 학생회를 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김누리: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계속 학생회를 해왔는데요. 제가 얻어가는 게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가 더 우선이지 학생회 활동에 관심도 없고 오히려 학생회장을 하니까 선생님들 잔소리만 더 많아지고 그래서 대학 와서는 크게 관심을 안 가지려 했었죠. 마침 또 코로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친했던 다른 학교 친구가 학생회 활동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얻어가는 게 되게 많다고 느꼈습니다. 학생회 사업을 진행하면서 계획서를 쓰고 정리해 가는 과정이 제가 나중에 직장 들어가서 하는 것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했고요. 학생회를 하면서 선배들을 많이 만나 뵙고 그것을 바탕으로 본인의 진로에 대한 도움까지 받는 걸 보면서 ‘학생회가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많은 걸 얻어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됐습니다. 군대 전역을 하고 24년도에 총학생회에 들어가 총학생회 국장단까지 하면서 학생 사회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요. 농생대 학생회를 보면서 몇 년간 학생회장단이 없다가 작년 학생회장단은 4월달에 재투표로 구성이 되다보니 활동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고요. 총학생회에서 보고 배운 걸 바탕으로 충분히 더 개선할 게 많아 보였고, 잘 이어서 하면 충분히 더 많은 걸 바꾸고 많은 걸 더 넣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농생대 학생회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조윤서: 저도 중고등학교 때 계속 학생회 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무래도 영향이 컸던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때는 코로나 시절이라 유의미한 활동을 많이 못했는데 제가 다녔던 중학교가 학생회 활동에 지원이 많았어요. 당시에 중학생인데 어떻게 그렇게 했지 싶을 정도로 규모 있는 행사들을 진행했었습니다. 부학생회장을 하면서 학교 예산을 받아서 회장 친구랑 같이 계획해서 규모 있는 축제에 무료 음료 행사를 집행해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당시에 중학생이었으니까 회장이랑 싸우기도 진짜 많이 싸웠거든요. 근데 그러면서 스스로 배우는 게 되게 많다고 생각했고요. 저는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대학 와서도 학생회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대학 입학하고 선배들이랑 OT를 갔는데 저희 과 선배들이 농생대 학생회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다들 일에 매진하면서도 사이가 너무 좋고, 일을 하면서 더 돈독해지는 것을 보면서 학생회에 꼭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선배들이랑 더 친해지고 싶은 것도 있었고 다양한 과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어떤 집단에 들어가면 그 집단이 애정을 정말 많이 쏟는 성격이거든요. 그렇게 활동하다 보니까 일하면서 힘든 게 있어도 친구들이랑 같이 술 마시면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대화를 하고 그러면서 집단에 애정도 더 많이 가고 이러면서 즐겁게 활동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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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이 이뤄낸 자유, 이제 우리가 지켜야


임세진: 두분 다 지난 4월에 김상진열사 의거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했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김누리: 어찌 보면 부끄럽지만 김상진열사와 그 역사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거나 크게 관심을 갖고 알아보지 못했었는데요. 행사에 참여하면서 저희가 지금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 것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 앞선 선배님들이 노력해서 얻어낸 자유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행사에서 봤던 것들을 과거로 추억할 게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자유에 대한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것을 저희가 어떻게 잇고, 어떻게 다음 세대에 넘겨주느냐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학생회장으로서 어떤 걸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조윤서: 저도 사실 되게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어요.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고 태어나 보니 민주주의가 너무 당연했고, 역사책들이나 영상을 보면서 ‘아,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많다, 그분들께 감사해야겠다’라고 피상적으로 생각을 했는데 직접 행사에 참석해서 음성자료도 듣고 백서도 받아서 읽어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가까울 수 있는 사람인 거잖아요. 저희 학교 선배님이시니까. 그래서 되게 멀게만 느껴졌던 그런 대단하신 분들이 그렇게 멀지 않은 분들이구나, 이분도 우리랑 비슷한 나이였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 되게 힘들게 지켜낸 민주주의라는 생각을 좀 더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관심없는 사람들한테는 그냥 역사책의 한 줄로 남는 그런 일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계속 기억하고 기념하는 분들이 있기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되새길 수 있는 거고 계속 이어져 올 수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방금 회장님이 말씀하신 거랑 비슷한데 앞으로 이어나가야 될 역할을 할 것은 저희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사실 평소에 좀 소시민적인 사람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과외로 국어를 가르치는데 국어 작품에서 민주화와 관련된 소시민적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 작품을 되게 많이 가르치거든요. 그런 걸 가르치면서도 저 스스로 굉장히 소시민적이고, 어떻게 이럴 때 소시민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지라는 의문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요. 큰 행동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계속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적극적이진 않을지라도 계속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좀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됐어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를 많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임세진: 안 그래도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 청년 학생들한테 이것들을 어떻게 전달하고 기억하고 보존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기념사업회 회원도 90년대 학번을 끝으로 세대가 좀 단절되었다고 볼 수 있죠. 아까 얘기했듯이 학생회가 일반화되면서 명맥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았던 부분들이 있고요. 재작년에 김상진 영화, 다큐멘터리 <1975.김상진>이 나왔는데요. 해외에서 상도 받고 전국을 돌며 상영회도 여러차례 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도 상영해보자라는 얘기는 나왔는데 아직 추진은 안됐거든요. 학생회가 계속 서 있으면 연결이 될 텐데 학생회도 띄엄띄엄 구성되다보니까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과 연결이 될 것 같은데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청년들의 느낌은 어땠나요? 본인들뿐만 아니라 주변 학생들의 반응들을 포함해서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12.3사태로 다시 깨달은 민주주의의 소중함. 더 많이 배워야


김누리: 일반적인, 학생회를 하지 않는 친구들은 때 정치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무지한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친구들조차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사실 당시에는 되게 두려움도 컸고 정말 겪어보지 않은, 책에서만 봤던 내용들이다 보니까, 근데 저희가 책에서 봤던 내용들은 그 후에 피해가 정말 컸다 보니까 저희도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컸고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여러 가지 정보들을 찾아볼 텐데 정보 자체도 너무 많아서 사실을 가려내는 것조차도 하나의 큰 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정보들이 진실이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하고 앞으로 가야 되는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같은 경우는 서울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단과대 회장들, 총학생회장단이 다 같이 모여서 서울대학교의 대표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가를 새벽 내내 고민했습니다. 이 사태에 학생들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을 해서 학생들의 안전을 어떻게 조성하고 연대를 어떻게 해야 되고, 대응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은 정말 민주주의가 소중하다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 더욱더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조윤서: 저는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더 많이 배워야 되지 않나, 앞으로 그게 뭐든 공부를 더 많이 해야 되지 않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 침대에 누워 있었거든요. 정말 거짓말인 줄 알았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싶었고, 다행히 또 상황이 금방 일단락은 났기 때문에 아 그래도 일단 다행이다, 그럼 끝났나 보다라고 조금 안일하게 생각을 했던 것도 있었어요.
사실 정치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냥 고등학교 때 ‘정치와 법’을 수강해서 원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정도이거든요. 앞으로 더 많은 청년들이 이런 민주주의 관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좀 더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치에 관련된 지식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배워야 되지 않나, 관련 지식이 있어야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왜 점점 정치에 소극적으로 행동을 취하게 되나 돌아봤을 때 저는 알지 못해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제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엄청 소극적인 편이에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배워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요즘 SNS를 보다 보면 정치적 양극화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심지어 SNS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쉬워졌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기 생각만으로 그게 사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아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만큼 배움이 앞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그나마 내란 사태가 금방 일단락될 수 있었던 이유도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서 배운 바가 있기 때문에 일단 이 상황을 빨리 종결시켜야 된다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서 끝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그런 교육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고, 공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정치 교육에 대한 논의가 다른 교육보다도 조금 더 이루어져서 어떻게 하면 얼마나 바람직하게 이러한 것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을까를 좀 더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졸업생, 그리고 각자 살 길을 찾아가는 개인주의 학생들


임세진: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데요. 농생대 학생들의 21세기 현실 인식과 고민거리는 어떤 것일까요?

김누리: 농생대 학생뿐만 아니라 다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취업을 어떻게 할지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농생대 학생들은 아무래도 그쪽 분야로 나갈 확률이 좀 더 높으니까 농업적인 부분을 보면 요새 기후 변화가 정말 심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농생대 학생으로서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되는지가 큰 고민 중 하나거든요. 저는 농사를 짓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나라는 국가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입장에서 누군가 농사를 지어야 되는데 그 인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금까지야 아직 이전 세대 선배님들이 계시지만 그분들이 결국 더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 그 많은 땅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이며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 단순히 어디 취직해서 돈 많이 벌고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내가 거기에 이바지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현재 창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쪽 분야 사람들이랑도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이런 경각심을 많이 일깨워 줄 수 있는지, 인식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해야 한 사람이 더 많은 토지를 관리할 수 있게 하는지 이런 부분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임세진: 어떤 창업을 준비하고 계세요?


김누리: 제가 식품 전공이다 보니까 식품 쪽으로, 커피 쪽 창업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기후 변화로 원두 가격이 많이 올랐고요. 우리나라는 원두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이다 보니 앞으로 원두가격도 점점 비싸지고 무역 적자도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커피가 이미 일상화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카페 사장들은 원두 가격에 더욱 더 민감해질 것이고요. 이 수요 공급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대체 원두를 만들어서 대체 커피를 만들자, 해서 지금 대체 커피를 만드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임세진: 원래 대체 커피라는 게 있어요?


김누리: 외국에는 보리로 만든 보리커피도 있고요. 치커리 뿌리로 만든 커피도 있죠. 최근에 대체 커피가 조금씩 확산이 되면서 익선동에 여러 가지 원재료를 활용한 대체커피점이 생기고 점점 부각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많이 팔리지 않지만 그쪽으로 준비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1, 2년 뒤면 좀 더 확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윤서: 저는 개인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점점 개인주의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보면 방금 회장님이 말씀하신 거랑 되게 다르거든요.
제 주변은 저랑 같은 3학년 친구들이 많아요. 이제 막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대체로 전공을 살리지 않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많은 학생들이 아무도 나를 먹여 살려주지 않고, 내가 열심히 찾아나가야 하고, 지금 스펙이라도 쌓아야 나중에 먹고 살 길이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케이스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전공을 안 살리려고 하다 보니까 다른 과 복수전공을 하거나 다양한 학회에 들어가서 스펙을 쌓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사실 농생대가 복수전공을 하기에 친화적인 단과대는 아니거든요. 제약이 있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 불만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많고요. 그렇다 보니 오히려 소속감은 떨어지고, 혼자서 열심히 해야 스펙을 쌓을 수 있다라는 그런 개인주의 성향이 조금 더 강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앞으로 뭘 해야 될지 아직도 고민이다, 그냥 취업하기는 좀 힘드니까 자격증을 준비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더 많이 갖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 ‘나 혼자 뭐 한다고 세상이 바뀌냐’ 이런 생각도 많이 갖가지고 있는 것 같고요. 아까 환경 문제를 언급했는데 사실 저는 환경 쪽을 복수전공하고 있기도 하고 연계해서 저희 과 대학원 진학을 할 생각이거든요. 저는 사회에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긴 했어요. 학생회도 누군가한테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했던 것도 있고요. 그런데 환경 분야로 가면 어쨌든 국가는 절대 환경 분야에 대한 지원을 버리지 않으니까 먹고 살 길은 있다라는 생각이 사실 가장 주됐던 것 같긴 하거든요. 저조차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제 주변 친구들만 봐도 어쨌든 당장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빡빡하다, 지금 열심히 해야 나중에 먹고 살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더 많이 하고있죠. 그런 현실적인, 어떻게 보면 되게 소시민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사는 것 같아요. 간혹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친구가 있긴 하지만 그 친구들조차도 자신의 생업을 가장 일단 메인으로 생각하고 여유가 있을 때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그런 느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배님들 만나고, 묻고, 듣고 싶습니다!


임세진: 소시민적 삶이라고 해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굉장히 큰 것 같아요. 예전에 원혜영 의원이라고 동문 분인데 부천시장하고 국회를 5선을 했는데 그분이 운동권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풀무원을 창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생각도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후에 다양한 활동들도 한편으로 대학 때 갖고 있는 생각들을 계속 갖고 있을 때 그런 것들을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구자를 보면 선배들의 다양한 얘기를 볼 수가 있습니다.(웃음)

그러면 농대 선배 중에 민주화 세력, 또는 김상진기념사업회 활동과 같은 활동을 하는 선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김누리: 앞에서 했던 이야기와 연관되는 것 같은데요. 지금 저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당연한 게 아니고 선배님들이 물심양면 노력하시고, 지원하신 덕분이라는 것을 느꼈고요. 저희가 계속해서 이어나가겠다라는 말씀을 다시 드리고 싶고요. 지금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저희가 상기하고 지금 나름의 문제들을 지금의 방식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아요. 그 의지들을 저희가 이어서 지금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앞으로 저희, 또 다음 세대 친구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윤서: 저는 오히려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민주화를 위해서, 하나의 가치를 위해서 되게 노력하신 분들이잖아요. 어떠한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그러한 노력을 계속 이어오실 수 있었는지 되게 궁금해요.
저는 아직도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도 확립이 덜 됐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가치 판단적인 부분에서도 학생회에서 마찰이 되게 많았거든요. 물론 되게 사소한 가치이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충돌이 발생하고, 그리고 돈 때문에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다 보니까 계속 가치 판단적인 문제로 싸우게 되더라고요. 아직도 저는 어떠한 가치를 1순위로 둬야 될지 모르겠고, 그리고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거기에 제 열정을 모두 쏟을 수 있는지 저에게 너무나 의문이 많아요.
그리고 솔직히 지금 저는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입장에서 이제 그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로 그렇게 의지가 강한 상태도 아닌데요. 저는 아직까지 살면서 그런 큰 이슈를 경험해 보지도 못했지만,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고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 나서서 민주화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하실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고요. 김상진열사 할복 이후에도 지금까지 그 일이 잊히지 않도록 계속해서 알리는 활동을 어떠한 생각과 의지로 이어오실 수 있었는지 너무나 여쭤보고 싶어요.
당연히 존경스럽기 때문에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요. 저는 앞으로 아직도 배워야 될 부분이 많은 사람이고, 아직 좀 어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같은 분야를 공부했던 선배님들이자 제가 감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한 행동들을 하신 분들께 인생 선배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묻고 싶습니다.

임세진: 저희 김상진기념사업회 정근우 회장님이 오늘 오시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못 오셨었거든요. 다음에 자리를 한번 마련할까요?

김누리, 조윤서: 좋습니다!!

임세진: 진짜요? 그럼 회장단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고 자리를 한번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75동에 있는 ‘김상진홀’은 활용도가 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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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관심을 유발하는 김상진홀’, 공간 이상의 효과


김누리: 저희 수업 자체는 거의 다 200동에서 진행이 되기 때문에 75동에서는 수업이 많이 진행이 되지 않고요. ‘김상진홀’ 같은 경우는 사실 일반 학생들은 많이 사용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긴 합니다. 저희가 가끔 회의할 때 활용을 하는데요. 일단 시설이 너무 좋고요.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도 더 좋다고 생각한 부분이 이름이 ‘김상진홀’이잖아요. 사실 그냥 205호지만 저희가 ‘김상진홀’이라 부르고 그 홀의 이름을 처음 듣는 학생들은 ‘왜 김상진홀이지?’라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분이 누구지? 하고 주변에 물어보든 인터넷에 검색이라도 한 번 하든 이렇게 관심을 갖고 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까 학생들의 관심을 어떻게 이끌어낼지라는 고민이라고 하셨는데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들면 좀 더 효과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상진홀’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 하고, 나아가 (제가 임기가 곧 끝난 입장이라서 좀 죄송스럽지만) 학생회랑 계속 연결된다면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가 새참 사업을 비롯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사업을 많이 하는데요. 그런 사업과 연계를 해서 김상진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과 이벤트를 같이하거나 학생회랑 같이 하는 사업에 이름을 같이 해서 저희가 홍보를 해 드리면 학생들이 ‘이거 뭐지?’하며 한 번이라도 더 알아볼 거고 익숙해지다보면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며 좀 더 효과가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김상진홀’은 이름에서 단순히 ‘그 공간이 좋다’ 이상의 더 큰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윤서: 저는 75동에서 수업을 조금 듣고 있거든요. 그래서 방금 말씀하셨던 205호실에 ‘김상진홀’이라는 이름을 두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김상진홀’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강의실들이 그렇게 네이밍이 되어 있는데요. 저도 실제로 궁금해서 ‘어, 이거 왜 이렇게 되어있지?’라고 친구랑 대화를 나눈 적이 있거든요. 저는 김상진 선배님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김상진홀’에 대해서는 추가로 궁금함을 가진 적은 없지만 처음 들어본 이름의 강의실에 대해서는 궁금해서 찾아본 적도 있어서요. 처음 들어본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김상진 선배님을 접할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회의도 몇 번 ‘김상진홀’에서 하면서 회의하기에 좋은 형태의 강의실인 것 같다고 생각했고요. 가끔 비어 있으면 혼자 들어가서 공부했던 적도 있는데 그때마다 좋았습니다.

임세진: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 후원금을 모금, 출자해서 ‘김상진홀’을 학교 측에 처음 제안했을 때 사실 좀 말이 많았었어요. 서울대학교에서 민주화 열사의 이름을 붙여 지은 홀이 없다는 거였죠. 여러차례 논의하면서 김상진기념사업회 고문이신 최윤재 동물자원과 교수님께서 학교측과 논의에 힘을 실어주셨고요. 여러 사람들의 힘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죠.

조윤서: 되게 의미가 있네요. 처음으로 네이밍된 민주화열사의 이름이 ‘김상진홀’이라니 더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임세진: 그렇죠. 그러니까 많이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 하고 싶은 말씀 혹시 있으실까요?

김누리, 조윤서: 선배님들께 항상 감사합니다.(웃음)

김상진기념사업회와 재학생들과의 연계가 단절되었다는 필자의 걱정과 달리 학생들은 김상진 열사의 이야기와 김상진기념사업회 선배들과의 연계를 언제든지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느낌에 한편으로 든든함과 한편으로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청년학생들에게 다가갈 방법들을 고민하던 선배들의 걸음이 느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10월 초 농생대학생회장단 선거위원회 공고가 떴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며 우려했던 바와 같이 ‘학생회장단 후보 없음’으로 학생회 선거는 무산되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25학년도 학생회가 무사히 마무리되길 바라며, 26년도에 학생들과 연계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고민하는 발걸음을 시작해야할 때이다.

** 사진은 표지사진 폴더와 학생회활동 사진 폴더에 있는 것으로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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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진_ 숭의여전 문창과에 입학, 문예창작보다 학보사 기사를 더 열심히 쓰고, 졸업 후 전국연합 기관지 ‘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신문 ‘건치신문’ 만드는 일을 하였다. 이후 성공회대 사회학과에서 공부하고 KOICA 봉사단을 다녀온 후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인터뷰하고있다. (sejin3025@hanmail.net)

Last modified: 202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