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제주 농업기술원 농촌지도사, 농화학 89)
6월 6일 현충일. 오랜 가뭄에 단비가 내려 들판이 촉촉이 젖고 한라산이 무척 가깝게 다가오는 날입니다. 경기도와 충청도의 갈라진 논바닥이 텔레비전에 나옵니다. 논이 없는 제주는 가뭄으로 인한 영향이 크지는 않지만 밭에는 비를 기다리는 많은 생명들이 있습니다.
지난 며칠간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심정이었습니다. 마늘과 보리 수확이 한창이라 비가 오면 수확하고 건조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고, 비가 오지 않으면 한창 밭에서 자라고 있는 귤나무와 고추 농가들이 물을 주느라 힘들 테니까요. 참깨와 콩도 파종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무튼 살아 있는 생명부터 살려야 하니까 내리는 비가 더없이 반가운 날입니다. 야속한 비가 조금만 내려 아쉽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또 제주발 AI가 발생하여 전국이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닭 살처분 현장에 동원되어 차마 못할 짓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농업이라는 것이 사람의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몇 년 전부터 제주도 이주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효리, 허수경, 장필순 등 이름 있는 연예인들이 한 몫을 했지요. 장필순은 우리 사무실에 와서 노래도 했습니다. 본토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광이 있는 제주에서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또는 여행을 왔다가 눌러 살게 된 젊은 청춘들, 농사를 짓기 위해 제주로 귀농을 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제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이 오면서 제주도 땅값과 집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중국 자본 영향도 컸습니다. 평당 500만원 아파트 가격이 1200만원까지 오르면서 한 채 값이 6억 원이 넘는 아파트도 있습니다. 4년 전 3억에 그 아파트에 입주한 친구놈은 작년에 6억에 팔아 빌라를 사서 이사를 하여 친구들 배를 아프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제주도 곳곳에서 집을 짓는 건축공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서 볼썽사납기도 합니다. 농사짓는 땅값이 평당 100만원이 넘는 곳이 많습니다. 4,5년 전만 해도 10만 원정도 하던 곳이었는데요. 이러다 보니 이 비싼 땅에서 농사짓는 것이 타산이 맞을 수가 없습니다. 주택이나 상가를 지어 분양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요.
이렇게 땅값이 오르다 보니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결혼하는 젊은 친구들이 집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집을 사는 것은 고사하고 빌리기도 힘들어, 점점 시내에서 먼 외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농민들입니다. 땅값이 오르다 보니 공시지가도 올해는 거의 50% 이상 올라 그만큼 세금이 올랐습니다. 비싼 땅에서 지은 농산물이라고 비싸게 팔리는 것은 아니지요. 농사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어야 하는데 농사지을 땅을 넓히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습니다.
귀농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농사지을 땅을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귀농하는 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매년 우리 사무실에서 실시하는 귀농교육은 보통 신청 당일 30분 만에 300명 정원이 마감되어 직원들에게 로비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정원을 채우는데 1주일이 걸렸습니다.
제주도는 관광으로 먹고 산다고 합니다. 매년 천만 명 이상이 제주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관광을 떠받치는 것이 농업입니다. 노랗게 감귤이 익는 과수원, 당근, 양배추, 브로콜리 등 사시사철 푸른 채소가 자라는 밭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 그런데 제주 농업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제주도도 농사짓는 분들이 나이가 많습니다. 농가상담과 영농교육을 하러 현장에 가보면 대부분 70대입니다. 논농사는 그나마 이앙기와 콤바인이 있어 나은 상황인데 제주도 농업은 대부분 밭농업이라서 주로 사람 손으로 이루어집니다. 제주도도 마늘농사가 많습니다. 올해 농협 수매가격이 kg당 3200원이고 산지수집상인은 그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하였습니다.
그런데 농협계약재배 계획량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상인에게 팔면 인부를 구해주고 마늘밭에 와서 가져가지만, 농협과 계약재배를 하면 직접 인부를 구하고 수매장소까지 마늘을 실어가야 하는데 사람도 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가격이 낮더라도 상인에게 팔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농기계를 보급하고 자동화 사업도 하고 또 요즘 대세인 스마트팜 사업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너무 부족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은퇴하시면 많은 감귤하우스와 밭들이 방치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땅값은 오르고 밭은 점점 없어지고 농사짓는 분들도 점점 줄어듭니다. 제주 농업이 위축되고 그 자리에 관광시설과 쇼핑물이 들어서서 제주다움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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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_ 제주토박이며 2004년에 제주로 돌아와 농업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제주를 찾아 주시는 분들과 소주 한 잔 하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집에서 구박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ㅜㅜ) 연락들 주세요.
Last modified: 2024-08-28